비약적인 경제 성장, 아파트 공화국으로 탈바꿈
80년대 공동주택 등 노후화 돼 정비사업 추진 중

대한민국은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압축 성장'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넓은 논과 밭으로 둘러 쌓여있던 도시는 어느새 높은 빌딩 숲과 병풍 아파트단지들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여 온 도시는 노후화됐고,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통해 다시 한번 변화를 꿈꾸고 있다.
도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고, 인류가 만들고 이룩한 모든 것인 담긴 '문명의 총화'라 할 수 있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성장과 쇠퇴를 반복해온 도시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주거환경신문은 정비사업 등을 통해 변화해 온 도시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살펴보고, 미래 도시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 편집자주

 ▶1930년대 무렵의 서울
1930년 대 경성에는 30여만명의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관청과 주택들은 점차 일본식으로 바뀌어갔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식민지 수도 경성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다시 태어났고, 현재 서울은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거듭났다.

 

청계천 복원 사업

 

▶청계천 복원 사업
오물과 쓰레기가 많았던 청계천을 복개하는 모습. 이후 복개된 도로 위에는 육중한 고가도로가 가설됐고 이는 도심을 관통하는 동맥이 됐다. 하지만 점차 환경오염과 교통 혼잡의 진원지로 바뀌어버린 청개천은 도심 미관을 해치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장애물로 변했다. 결국 40년이 지난 뒤 서울시는 '복원사업'을 통해 도로를 걷어냈고, 청계천은 물이 다시 흐르며 생명을 되찾았다.

1930년대 무렵의 서울

▶용산에서 바라본 남산
서울 도심의 모습이 고층 빌딩숲을 이루게 된 결정적 시기는 1983~1984년이다. 이 무렵 서울시는 고도제한을 풀고 건폐율과 용적률을 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또한 서울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등 국제행사에 대비해 토지이용률이 낮고, 불량건축물이 밀집된 도심 430개 지구를 재개발 예정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고층 건물 위주의 현대적 공간 창출에 주력해 1987년 무렵에는 약 39개 지구가 재개발됐다.

양천구 목동지구

 

▶양천구 목동지구
60여년전 안양천 제방공사로 농경지가 생기고 마을이 형성된 양천구 목동은 과거 허허 벌판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3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돼 공동주택 2만5000세대 학교(18개소)  종합병원(2개소), 종합운동장, 근린공원(6개소) 등이 들어선 목동은 현재 서부지역의 대표적인 거주단지로 거듭났다.

60여년전 안양천 제방공사로 농경지가 생기고 마을이 형성된 양천구 목동은 과거 허허 벌판에 불과했다. 하지만 1983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돼 공동주택 2만5000세대 학교(18개소)  종합병원(2개소), 종합운동장, 근린공원(6개소) 등이 들어선 목동은 현재 서부지역의 대표적인 거주단지로 거듭났다.

동대문 운동장 방향

 

▶동대문 운동장 방향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의 체육시설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공원에 신설 경기장이 집중됨으로서 장충체육관, 동대문 운동장, 효창구장 등 기존의 체육시설은 보조적 역할에 그치게 됐다. 이들 체육시설은 현재 사회체육시설로 전환되거나 대규모 공연장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의 체육시설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공원에 신설 경기장이 집중됨으로서 장충체육관, 동대문 운동장, 효창구장 등 기존의 체육시설은 보조적 역할에 그치게 됐다. 이들 체육시설은 현재 사회체육시설로 전환되거나 대규모 공연장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신령들을 모신 '황궁우'

▶신령들을 모신 '황궁우'
지금의 시청 앞 조선호텔 자리에는 신령들의 신위를 모신 '황궁우'라는 팔각정자가 있다. 1897년 고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천제를 지낸 후, 나라이름을 대한제국이라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한 바 있다.


동대문에서 제기동 방향

▶동대문에서 제기동 방향
동대문구 제기동은 한방산업 특구로 지정돼 약령거리 등 한약재 유통상들이 밀집했지만, 유흥업소 등이 늘어남에 따라 특구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최근 동대문구청은 제기동 약령시장 일대를 한방산업 진흥지구로 지정하고 용적률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건설은 아파트 2만5000세대, 학교 18개, 종합병원 2개, 조합운동장, 그리고 근린공원 6개를 포함하는 종합개발사업이었다. 이곳의 열병합발전소는 각 가정에 지역난방을 제공했고, 자전거도로까지 갖춘 서부지역의 대표적인 거주단지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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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년호도 광무로 바꾸었으니 이 때가 광무 1년이다.

원구단의 원형모습(2005년 노숙경화가) 현재 왼쪽 '황궁우'만 남아있고 황금색 지붕의 원구단은 조선호텔이 깔고 앉아 있다.

그러나 원구단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13년뒤 나라를 빼앗기자 세조 이후 433년만에 부활되었던 원구단도 1913년 일제에 의해 헐리고 그 자리에는 조선총독부의 전용인 철도호텔이 들어 앉게 되었는데 조선의 신령들을 모셔놓았던 황궁우는 남겨 두었다.
 
한 켠에서 그들의 신식건물을 올려다 보도록, 대한제국의 초라한 모습을 상징시킨 것이다. 사실 실체를 잃고 이름만 남아 있는 지금의 원구단은 '원구단터'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민족의 자강을 하늘에 호소했던 신성한 원구단은 왜인들의 잠자리와 배설물로 희롱된채, 해방 후 아직도 1968년에 이름을 바꾼 조선호텔이 깔고 앉아있는 것이다.

 /김병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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