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방침에 따라 일선 자치구 각종 사유로 인·허가 보류
-13개구 사업시행인가 등 보류, 12곳은 신청 자체가 무의미

공공관리제도의 덫에 걸려 허덕이는 서울시 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장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과 함께 무더기로 사업시행가 등 행정처리 보류로 시름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 방침에 따라 해당 지구 인·허가청들이 "박 시장이 곧 정비사업의 모든 것을 발표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 혹은 "4.11총선 이후에 심의에 들어갈 것이니 기다려라" 등의 이유로 보류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주거환경신문에서 25개 구청 담당자들을 상대로 이 같은 사실을 문의한 결과 구로구와 마포구를 제외하곤 대다수 구청에서 한결같이 "인가신청이 보류된 구역은 없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기에 급급했다.

이에 서울시 클린업시스템에 나와 있는 조합설립인가를 득한 25개구 재개발·재건축구역 조합장 및 집행부 관계자들과 직접 통화한 결과 상당수 구역에서 사업시행인가 및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했음에도 보류된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조사결과 대다수 구역들이 박 시장이 당선된 직후 사업시행인가 등을 신청했다 보류된 상태였다.

자치구별로 살펴보면  강동구 2곳  강남구 1곳  구로구 1곳  노원구 1곳  마포구 1곳  서초구 2곳  성동구 1곳  성북구 5곳  송파구 1곳  영등포구 2곳  은평구 4곳   종로구 1곳  중구 3곳  중랑구 1곳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시 건축심의보류에 따른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곳은 장위뉴타운과 길음뉴타운이 포진해 있는 성북구였다. 길음2재정비촉진지구를 비롯해 길음3구역과 4구역, 장위7구역과 10구역 모두 사업시행인가 신청 후 보류 상태로 시간만 잡아먹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오경석 길음3재정비촉진지구 조합장은 "지난해 7월 사업시행인가 신청 후 공람까지 했는데 관리처분계획에서나 필요한 매도청구 판결문을 요구하는 등 알 수 없는 이유로 보류시키고 있어 조합원들에게 청원서를 걷어 구청에 제출했다"며 "불법을 해달라는 것도 생떼를 쓰는 것도 아닌데 보류로 인해 발생한 금융비용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용도 조합원 분담금이 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울분을 토해냈다.

또 익명을 요구한 성북구 소재 한 조합장 역시 "김영배 성북구청장의 경우 피트니스센터 개소식은 다니면서 조합장들의 면담은 거부하고 있다"며 "박 시장이나 김 구청장이나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움직이려 들지 말고 열악한 주거환경과 맞서 싸우며 버텨내는 주민들의 실상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인·허가 보류가 없는 자치구도 12곳이나 됐다. 이에 해당지역 조합장에게 전화로 "왜 인가 신청을 넣지 않고 있냐"는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답변이 현재 서울시 재개발·재건축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용산구의 한 조합 총무는 "인·허가권자인 서울시에서 속도조절, 형평성, 공공성 등의 이유로 심의를 보류하고 있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성이 없지 않냐"고 반문했으며, 서대문구의 한 조합장은 "사업시행인가 신청과 동시에 협력업체 계약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조합운영비도 부족해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성동구의 한 조합장도 "반대파에서 사업지연에 따른 책임을 물으며 조합집행부를 무능하다 모함하는 등 뿌리째 흔들고 있는데 이는 다 서울시에서 만든 분쟁"이라며 "인·허가 지연에 따른 반대파 목소리가 커져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업시행인가 신청을 넣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처럼 부동산 경기침체와 더불어 인·허가 보류가 장기화됨에 따라 조합원들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관련업계전문가들은 먼저 정비사업장의 사업성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각종 사유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곳은 법적상한용적률을 적용하고, 공공관리제도의 경우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보단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역으로 한정, 시공자 선정시기를 다시금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진수 건국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인·허가 보류에 따른 사업이 지체되면서 늘어나는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현금청산을 통해 빠져나가고 있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다시 시공사 입장에서는 리스크 방지를 위해 도급공사비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조합과 갈등의 씨앗이 돼 시공자 교체라는 최악의 수까지 두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이번 조사로 인해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에 대한 일선 인·허가청의 방만한 운영은 물론 조합장들이 종종 울분을 토하듯 털어놓는 공무원들의 철밥통식 행정의 단면을 여실히 들어낸 것이다. 때문에 관련업계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관장하는 관련법이 수시로 개정되는 만큼 전문성이 강화를 위해서라도 순환보직제를 손질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단적으로 201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정부부문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인사제도의 개선보고서'에 따르면 실무를 맡는 과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해 업무를 파악 및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전문성 축적은 고사하고 정부의 역량이 경쟁국에 미치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관련전문가들은 동일 보직 장기근무에 따른 침체 방지(공무원임용령)를 이유로 정기적으로 자리를 바꿔주는 순환보직제 때문에 인사철이 되면 동시다발적으로 업무 인수·인계가 일어나 '마찰적 비효율'이 생긴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순환보직제에 대한 현실적 감시장치가 없기 때문에 전문지식을 키우려는 노력보다는 철밥통식 행정으로 국가 행정서비스의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을 방지하고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높이이기 위해 보직순환의 범위를 최대한 줄이고 한 자리를 맡으면 일정기간 이상 일할 수 있게 전보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중장기적으로는 공직의 분류체계를 현행 계급제(1~9급)에서 각각의 보직에다 적임자를 앉히는 직위분류제로 바꾸고 전문성에 따라 보수를 더 받는 연봉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호정 기자 /

저작권자 © 주거환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