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합정, 이촌, 성수, 압구정'
2009년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이 한강의 공공성 확보를 통해 수변도시 조성이란 거대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디자인 서울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들 구역엔 '전략정비구역'이란 그럴싸한 명칭도 붙었다.

당연지사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연일 호가를 쳤다. 성수의 경우 10평대 다세대주택의 시세가 한때 3.3㎡당 7000만원을 호가하기도 했으며, 합정 역시 3.3㎡당 5000만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과도한 기부채납 비율과 함께 초과이익환수제 등 각종 악재에 매수세가 꺾이더니만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찬·반투표에 매몰된 직후부터는 사업추진여부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하락세 국면으로 전환됐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임해 뉴타운 출구전략을 비롯해 불분명한 잣대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정책을 뒤흔들고 있어 현재 한강변 전략정비구역 중 어느 곳 하나 뺄 것 없이 일촉즉발 상황이란 게 업계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실제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뱅크의 자료에 따르면 오 시장이 사퇴한 8월부터 현재까지 한강변 전략정비구역 내 아파트단지의 시가총액이 3조6172억원이 증발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주거환경신문이 성수를 제외한 4개 전략정비구역의 공인중개사 및 주민 그리고 업계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현재 상황과 현장분위기 등에 대해 심층 취재했다.

 여의도, 맨해튼 만들려면 기부채납 줄여

한강 공공성 회복선언과 함께 발표된 여의도전략정비구역. 뉴욕의 맨해튼처럼 금융과 주거가 복합돼 있는 공간으로 재창출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특히, 서울시가 구역 인근을 금융 중심지로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어 연계를 통해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트릴 수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물론 사업의 물꼬가 트여야한다는 부대조건이 덧붙긴 했지만 기본계획이 발표된 2009년 대비 2010년 아파트 시세가 요동치며 3억원 가량 상승했기에 곧 장밋빛 청사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서울시가 지구단위계획 주민설명회 자료가 나온 직후부터 하락 국면에 접어들어 현재까지 아파트별로 적게는 5000만원에서 2억원 이상 하락한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인근 A공인중개사는 "기부채납비율이 원체 높다보니 주민들이 반대가 거세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어 투자문의 자체가 끊긴 상태"라며 "그나마 시세를 이 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개발호재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가 여의도전략정비구역에 요구한 기부채납비율은 40%다. 시는 용적률과 층수 인센티브가 부여됨에 따라 상호 윈-윈 할 수 있단 입장인 반면 지역주민들은 아파트가 낡긴 했지만 기반인프라 시설이 풍부함에 따라 공장지역에서는 적용되는 과도한 기부채납을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단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열린 지구단위계획 주민설명회 이후 사실상 모든 사업 진행이 멈춰버린 상태다. 나아가 원안 폐지를 위한 동의서를 징구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소연합(여의도 지구단위계획 철회를 위한 모임) 관계자는 "주민들의 의사도,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계획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며 "원안 폐지 후 차라리 개별 단지별로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결국 과도한 기부채납비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사업의 진행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에 변선보 주거환경연합 정책실장은 "결국 시와 주민들이 얼마나 빠른 시일 내 적절한 합의를 도출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합정, 사업성 확보 위해서라도 원안대로

"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지금도 급매가 속출되고 있는데 사업을 축소하거나 재검토 할 경우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마포 합정동 C공인중개사)

사실상 합정전략정비지구의 경우 투자자들의 관심권 밖으로 벗어난 상태다. 이를 반증하듯 합정역을 중심으로 빼곡했던 공인중개사사무실 역시 대거 줄었다.

이와 관련해 구역의 한 반석공인은 "주민설명회가 무산된 직후부터 거래가 전무하다 보니 많이들 떠났다"며 "우리만 하더라도 벌써 8개월째 거래가 단 한건도 없다"고 푸념했다.

문제의 시발점은 서울시가 당초 개발계획을 대폭 축소하면서부터다. 2009년 1월 시는 50만3239㎡ 중 당인리발전소를 제외한 36만8,624㎡를 고밀도 개발하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성산중학교를 중심으로 한 중앙부 20만5,212㎡를 개발대상에서 배제하는 수정안을 발표함에 따라 사업성이 삐걱거리게 됐다.

여기에 강변북로 지하화 취소와 함께 당안리 발전소 이전이 백지화되고 지하화가 확정된 것 역시 사업을 망가뜨린 주범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때문에 현재 합정전략정비지구는 원안대로 사업을 추진하자는 주민들과 이 기회에 사업을 폐지하자는 주민들로 양분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방치돼 있는 상태다. 더욱이 올해 12월이면 지구단위계획 지정이 실효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와 관련해 합정역 인근 B공인 대표는 "전략정비구역 지정 후 개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많이 몰려 한때 3.3㎡당 6500만원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3000만원에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서울시에서 결정된 사항이 아닌 계획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이미 투자자들은 물론 주민들로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사실상 연남동 차이나타운 마냥 흐지부지 개발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며 “한강변 개발구역에 대한 도시관리계획 등이 발표되면 새로움 밑그림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이 추가 반영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촌, 기부채납 줄여 분담금 좀 줄입시다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광역 녹지축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이촌전략정비지구. 주거 가치만 놓고 볼 때 한강변 5대 전략정비구역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꼽힌다.

강남 아파트단지가 주방이나 후면발코니를 통해 한강 조망이 가능한 것과 달리 이촌지구는 아파트 거실에서 한강이 시원스레 보이고, 풍부한 개발호재가 든든하니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일례로 2016년 용산에 국제업무단지, 국제여객선터미널 등이 들어서면 이촌지구 아파트 단지가 배후 주거지역으로 새롭게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부채납을 받아들이고 착공에 들어간 렉스아파트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답보상태로 머물러 있다. 더욱이 압구정과 성수전략정비구역과 달리 통합재건축 방식이 아닌 개별재건축 방식이지만 분담금이 만만치 않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윤상필 주거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여의도 대비 이촌지역의 기부채납비율이 낮긴 하지만 오히려 분담금만 놓고 보면 높다"며 "따라서 정부차원의 추가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 안에 사업이 완료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이촌전략정비구역 내 재건축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한강맨션, 현대, 왕궁, 삼익, 반도, 신동아 등 6개 단지 중 추진위원회 및 조합이 설립된 곳은 한강맨션, 왕궁아파트, 삼익아파트 뿐이다. 나머지 단지들의 경우 추진위원회 구성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인근 K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이촌지구의 가장 큰 문제는 추가분담금"이라며 "기부채납을 통해 차 떼고 포 떼고 나니 막대한 분담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주민들 입장에선 이런 분담금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반대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적으로 1:1재건축 방식을 채택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왕궁아파트 105㎡형이 현재 10억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완공 후 151㎡형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추가분담금이 무려 4억원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이처럼 사업성이 떨어지다 보니 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고, 주민들도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시에서 발표한 개발계획안에 따르면 최고 50층, 평균 30층 이하 아파트 4339가구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용적률은 277(삼익·왕궁)~322%(현대·신동아)로 한강맨션 550가구, 신동아 40가구 등의 일반분양물량이 예상된다. 기부채납률은 약 25% 수준이다.

압구정,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아 "기다리자"

"주차장 문제 외엔 불편한 부분이 전혀 없는데 굳이 주민들의 돈으로 공원 등의 공공시설을 건립할 필요가 있을까요?"(압구정 현대아파트 소유자)

압구정전략정비구역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느긋함을 넘어서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 시절에도 기부채납비율이 25.5%에 달했기 때문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어떤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더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인식과 함께 해제되더라도 상관없단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다.

나아가 주민들이 고층아파트 건립 자체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등 여타 재개발·재건축 현장과는 성향 자체가 애초부터 달랐다. 이에 서울시는 한강변 중에서 가장 상징적인 압구정전략정비구역의 재건축 사업을 위해 지난해 8월 지구단위계획을 발표하기 전부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는 등 공을 들였다.

대표적으로 사업예정지 144만㎡ 중 25.5%를 기부채납 받아 녹지 등 공공시설을 조성하는 대신 기존 198%에 불과한 용적률을 336%까지 높여 50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를 건립, 용적률 상향에 따른 1489가구에 대한 일반분양 수익 100% 양도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압구정지구 내 재건축 단지 중 움직임을 보인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오히려 시큰둥한 반응만 보인 채 지금까지 이 같은 기조가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압구정동 C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이 일대 재건축 아파트들의 경우 내부수리가 잘돼 사는데 지장이 없으며, 투자자보다 실거주 목적으로 사는 노인층이 많아 재건축이 급한 상황이 아니다"며 "주민들이 사업이 축소되거나 백지화되더라도 아파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했다.

또 B반석공인 역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현재 3.3㎡당 4,000만~5,000만원의 아파트들의 시세가 3.3㎡당 6,000만~7,000만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한 후 "25%에 달하는 기부채납과 2억~4억원의 추가분담금, 초고층아파트에 대한 주민반대 등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는 만큼 사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서울시 차원의 파격적 조건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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