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설사 때문에 죽겠어. 시간되면 화요일에 사무실 좀 들려줘."
금요일(18일) 오후 평소 알고 지내던 A조합장에게서 짤막한 전화 한 통이 왔다. 그리고 월요일(21일) 오후 경 휴대폰에 'A조합장 사망, 00의원 영안실 0호'라는 문자가 찍혔다.
불과 내일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오늘 죽었다니. 더욱이 40대 후반 밖에 되지 않았고, 지병도 없었던 터라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에 A조합장에게 소개 받은 바 있는 그의 매제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실이었다. 일요일에 일이 있다며 집을 나섰던 A조합장은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여직원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와 동시에 기자 역시 자식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라 초등학생에 불과한 그의 아들이 우선적으로 생각났다.
화요일(22일) 오전 A조합장이 잠든 장례식장에 갔다. 사진 속 A조합장은 너무나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항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줄담배를 피우며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A조합장이었기에 그 모습 자체가 낯설게 다가왔다.

3년여 전 A조합장을 처음 만났다. 시청에서 강제적으로 A조합장의 정비구역을 뉴타운으로 묶으려는 움직임에 항의하는 집회 때였다. 당시 A조합장은 조합설립동의서를 87%이상 징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비율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는 고충을 겪고 있었다.

때문에 시청에서도 A조합장의 정비구역에 인근 아파트들을 편입시키는 방안 등을 내놓으며, 사업방향을 재설정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A조합장은 물론 주민들도 사업성 악화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피력, 시청의 강제적 움직임이 지속되자 주민들이 시청을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이처럼 10여 년간 각종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A조합장은 지난해 시공자를 선정했다. 이제 몇 고비만 더 넘기면 자신의 청춘을 바친 아파트를 볼 수 있다며 웃는 A조합장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유를 엿봤고, 별다른 소식이 없기에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터였다.

그리고 다시 받은 전화와 문자. 상주와 짤막한 대화 후 나오는 길에 A조합장의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해맑다. 상황에 대한 파악이 아직 정확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았다.
비로써 화한 10여개에 불과한 초라한 A조합장의 장례식장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생전에는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던 업체사람들의 꽁무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회의 냉정한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참상이다.

하지만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던 도중 망인이 된 추진위원장과 조합장들의 장례식장 분위기 역시 A조합장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년여 전 안양의 모 추진위원장이 쇼크사 했을 때도 그랬고, 그 이전에 스트레스로 인한 심근경색을 앓던 서울의 한 조합장이 급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을 추진할 때는 각종 이권에 개입하기 위해 구워 삼을 필요가 있었지만, 망인이 된 이후에는 더 이상 뽑아 먹을 것이 없기에 그런 것인가. 이에 조합장이란 허울 좋은 명함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그들이 얻는 게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최소한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 있기 간절히 소망한다.
/이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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