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갈등 확대와 매몰비용 문제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 소요

김진수 교수 /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서울시가 지난 3월 정비구역 직권해제에 대한 조례를 개정하고 4월부터 직권해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성북구 정릉3·8 정비예정구역 등의 직권해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강북의 일부 재개발 구역에서는 재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토지등소유자 1/3 이상의 동의를 받아 직권해제를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직권해제’란 주민들이 동의를 받아 추진위나 조합을 자진해산하는 경우와 달리 주민 갈등이나 사업성 저하 등으로 사업추진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시장이 직권으로 정비사업 구역을 해제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직권해제가 가능한 경우를 ▲토지 등 소유자의 과도한 부담이 예상되는 경우 ▲정비예정구역 또는 정비구역 등의 추진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두 가지로 규정했다.

먼저 토지등소유자의 과도한 부담이 예상되는 경우는 조합 등이 입력한 정비계획 등으로 산정된 추정비례율이 80% 미만인 경우로 규정했다.

또한 추진상황으로 보아 지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노후도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행위제한 해제 또는 기간만료로 정비구역 지정이 어려운 정비예정 구역 ▲추진위원회위원장 또는 조합장 장기 부재 등 추진위 또는 조합 운영이 중단된 구역 ▲자연경관지구, 최고고도지구, 문화재보호구역,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등이 포함된 구역 중 단계별로 사업이 지연된 지역 ▲해당 구역과 주변 지역이 역사ㆍ문화적으로 가치 보전이 필요한 경우 등 6가지로 정했다.

서울시의 이와 같은 직권해제 기준이 도입되면서 여러 현장에서 벌써부터 부작용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직권해제 기준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지적과 함께 구역의 특성을 고려치 않고 일괄적 기준을 도입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과 서울시에서 교묘하게 해제가 유리한 쪽으로 기준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단 토지등소유자의 과도한 부담이 예상되는 경우로 추정비례율이 80% 미만인 경우 구역을 해제하기로 했는데 비례율은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고 지역적 특성에 따라 비례율이 낮더라도 사업을 진행해야 할 곳이 있음에도 무조건적인 80% 기준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일정기간 안에 다음 사업진행 수순을 밟지 못하는 경우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부작용이 우려된다. 서울시 일부 구역은 추진위를 구성하고도 수년간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사업진행을 할 수 없는 곳도 있고 서울시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인허가를 미루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구역도 있다.

한양도성 인근의 한 구역에서는 “이미 2012년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는데 같은 해 한양도성 사업이 추진된 이후로 뚜렷한 이유 없이 재개발 관련 인허가가 미뤄지고 있다”며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을 직권해제 기준으로 제시한 것이 사실상 한양도성 사업을 위해 인근 정비구역을 강제로 해제시키기 위한 사전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선 현장에서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기준은 ‘사업이 지연된 구역의 토지등소유자 1/3 이상이 해제를 요청하는 경우로서 주민의견 조사 결과 사업찬성자가 50% 미만인 경우’라고 말하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의 여파로 아직 정상화되지 못한 상당수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뉴타운 출구전략 등이 반복되며 주민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토지등소유자 1/3 이상의 해제 신청은 충분히 가능한 반면 주민의견 조사를 진행하는 경우 전체 토지등소유자의 50% 이상의 찬성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단 주민의견 조사를 들어가게 되면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쉽사리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의견조사를 진행하면 상당수 주민들이 응답을 하지 않아 찬성도 반대도 50%를 넘기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재개발 현장에서는 서울시가 이러한 상황을 충분이 파악하고 있음에도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지정되어 있는 구역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해제를 원하는 사람들의 수를 파악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데도 주민의견 조사에서는 반대자가 50% 이상인 경우가 아닌 사업찬성자가 50% 미만인 경우로 기준을 마련해 결국 구역 해제를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비구역의 해제와 관련된 것들은 주민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비사업의 특성상 구역 내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하기에 이러한 주민의견 조사 등은 사업분위기를 저해하고 주민갈등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구역을 해제할 경우 매몰비용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지금까지 서울시에서 매몰비용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서며 각종 소송 등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서울시는 직권해제 대상 구역의 경우도 자진해산과 마찬가지로 검증위원회가 검증한 금액의 70% 이내에서 매몰비용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가 해산된 추진위들에 지급한 매몰비용 보조 금액은 전체 신청금액의 약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막대한 사업비가 소요되는 정비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미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재건축·재개발 등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 구역을 해제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비구역 지정도 신중해야 하지만 이미 지정된 구역의 해제는 이보다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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