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무리한 요구 막고 조합에 유리한 계약 끌어내는 카드로 활용

최근 사업성이 뛰어난 재건축 구역들을 중심으로 시공사 교체 카드를 통해 사업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정비사업에서 시공사들은 갑보다 높은 이른바 ‘슈퍼 을’로 불리며 시행자인 조합과 갑을관계가 뒤바뀌는 모습을 보여왔다. 경험이 부족한 조합에서는 아무래도 뛰어난 전문 인력과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시공사를 상대하기에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수주 당시에는 조합원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것 같던 시공사가 시공권 확보 이후 계약 협상 과정에서는 태도가 돌변하거나 교묘한 독소조항을 삽입해 자신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에 급급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 대여금 중단, 공사 중단 등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 공사비 인상, 사업시기 조정 등을 요구하며 조합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러한 시공사의 횡포에 맞서 조합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최근 시공사 교체 작업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방배5구역은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시공자 계약해지의 건을 통과시켰다.

시공사인 프리미엄사업단(GS·롯데·포스코)이 조합에 운영비를 대여해주지 않고 지급보증 거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도 이뤄지지 않아 조합에서는 결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시공사에서는 뒤늦게 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히고 홍보요원을 통해 조합원 직접 설득에 나섰으나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지는 못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총회에서 전체 조합원 1144명 중 970명이 참석한 가운데 865명이라는 압도적 숫자가 시공사 해지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앞서 이주를 마치고 철거에 돌입한 과천1구역에서는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이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공사를 중단시키자 지난 1월 총회를 열고 시공자 계약해지의 건을 통과시켰다.

이후 새로운 시공사 선정 작업에 들어갔고 현대건설, 대우건설, 지에스건설 3개사가 입찰에 참여해 과열양상을 띨 정도로 치열한 수주경쟁을 펼친 결과 지난 26일 총회에서 대우건설이 낙점됐다.

당초 일각에서는 기존 시공사와 계약해지 이후 새로운 시공사를 제대로 선정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기도 했으나 메이저 3개사가 총력전을 펼치는 등 성공적으로 시공사 교체를 마무리했다.

실제 시공자 계약해지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교체 카드를 꺼내들면서 시공사와의 협상을 이끌어내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

강남 대치3지구는 당초 지난 25일 열리는 총회에서 시공사 대림산업에 대한 계약 해지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철회하고 시공사와의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장위6구역 역시 인근 지역에 비해 높은 공사비에 대한 협상에 난항을 겪자 시공자 계약 해지와 관련해 대의원회의를 개최하기로 했으나 이를 연기하고 재협상에 돌입했다.

고덕3단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와 같은 시공사 교체 바람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른 시공물량이 줄어든 데다 신규 사업보다 위험부담이 덜한 재건축 사업에 집중하면서 건설사 사이에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조합들이 자신 있게 시공사 교체를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동안 시공사 교체를 단행한 조합들에서 이전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학습효과가 생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공사 교체의 근본적 원인은 횡포에 가까운 시공사들의 무리한 요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시공사들이 수주 당시와 다르게 본 계약 체결시에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계약서를 만들고 설계변경, 특화사업 등의 갖가지 명목으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등 전횡을 일삼아왔다. 더욱이 조합에서 공사비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여금 지금 중단, 공사 중단 등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때문에 조합에서는 자칫 사업지연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지만 시공사 교체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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