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도시 건축 혁신(안) 발표 … 정비계획 수립 전 ‘사전 공공기획’ 신설

서울시가 정비사업에 대해 사업 초기부터 관리하고 나서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시는 지난 12일 아파트 정비사업 혁신, 건축디자인 혁신을 양대 축으로 하는 ‘도시‧건축 혁신(안)’을 발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파트는 서울 주택유형의 58%를 차지할 정도로 민간건축물 중 그 비중이 압도적이다. 특히 2030년까지 서울시내 56% 아파트가 준공 후 30년 이상 경과되어 정비시기가 도래하고, 건축물 내구연한까지 고려하면 미래 100년 서울의 도시경관이 결정되는 만큼 지금이야말로 서울의 도시‧건축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설명했다.

도시‧건축 혁신안은 ‘도시‧건축 혁신을 위한 뉴 프로세스’를 실행을 의미한다. 도시계획 결정권자로서 서울시가 정비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민간과 함께 고민하고 전문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것.

정비계획 수립 단계부터 도시 전반의 경관과 역사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입체적인 건축디자인을 유도하는 동시에, 민간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서 사업성과 투명성은 높이고 기간과 비용, 혼선과 갈등은 대폭 줄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정비사업 초기단계 ‘사전 공공기획’을 신설해 선제적인 정비사업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공공기획~사업시행인가까지 공공이 프로세스 관리와 절차이행도 조정‧지원한다. 또, 아파트의 단절성과 폐쇄성을 극복, 주변에 열린 아파트를 조성하기 위한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을 마련, 앞으로 모든 아파트 정비사업에 일반 원칙으로 적용한다.

서울시에서는 정비계획안 수립에 공공의 가이드가 반영되면 정비계획 결정이 이뤄지는 심의 단계 도시계획위원회 개최 횟수를 3회→1회로, 소요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20개월→10개월)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도시‧건축혁신(안)의 주요 골자는 정비사업에 대한 ▴공공의 책임 있는 지원을 위한 ‘뉴 프로세스’ 실행 ▴‘사전 공공기획’ 단계 도입 ▴아파트단지의 도시성 회복 ▴건축디자인 혁신 등 4가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문조직을 신설하고 제도적 지원도 병행한다.

 

∥정비사업 전 과정 공공이 협력 '뉴 프로세스'

먼저 정비계획 수립 전 사전 공공기획부터 사업시행인가까지, 정비사업 전 과정을 공공이 책임 있게 관리‧조정‧지원하는 ‘뉴 프로세스’를 도입할 방침이다.

특히, 정비사업이 신속하게 결정‧추진될 수 있도록 정비계획 수립 전 ‘사전 공공기획’ 단계에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의 자문‧협력으로 계획의 큰 방향을 세우도록 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여러 차례 보류되는 일을 방지해 정비계획 결정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단축(심의 3회→1회, 기간 20개월→10개월)한다는 목표다.

또, 건축, 교통, 환경 등 각종 영향평가 심의단계에서도 관련 부서 간 협업을 통해 지원해 심의기간을 최대한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정비계획 수립 전 ‘사전 공공기획’ 도입

새롭게 도입되는 ‘사전 공공기획’은 정비계획 수립 전에 공공이 건축계획, 지역특성, 사회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각 단지별로 전문적이고 선제적인 정비계획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단계다. 기존의 계획수립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폭넓게 고려함으로써 향후 예측가능성을 담보한 가운데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가이드라인은 용적률, 높이 같은 기존의 일반적 계획요소뿐 아니라, 경관‧지형, 1인가구 증가 같은 가구구조의 변화, 보행‧가로 활성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단지별 맞춤형으로 제시한다.

예를 들어 구릉지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의 경우 지형에 순응하는 건축물 배치를 원칙으로 하고 구릉지 경관을 고려해 건축물 높이에 차이를 둔다거나 역세권 등 대중교통중심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는 상업‧업무‧주거가 결합되도록 하고, 생활가로변과 맞닿은 아파트는 저층부에 개방형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하고 오픈 스페이스 등을 설치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생활공유가로’로 조성하는 등 지역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아파트 조성기준’ 마련… 슈퍼블록 쪼개고, 입체적 지구단위계획

도시 속 ‘섬’처럼 단절되고 폐쇄적이었던 아파트가 주변과 연결되는 열린 생활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을 새롭게 마련할 계획이다. 슈퍼블록은 쪼개고, 아파트지구 같은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의 경우 단지를 넘어서 일대 지역을 아우르는 입체적 지구단위계획으로 확대 수립한다는 것. 사전 공공기획 단계는 물론, 앞으로 서울에서 시행되는 모든 아파트 정비사업의 일반 원칙이 된다.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은 크게 세 가지 방향 아래 수립한다. ▴하나의 단지가 하나의 거대 블록(슈퍼블록)으로 조성됐던 것을 여러 개 중소블록으로 재구성해 중간중간에 보행로를 내고 ▴보행로 주변 저층부에는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집적해 ‘생활공유가로’로 조성한다 ▴역세권 등 대중교통중심지 주변 아파트는 상업‧업무‧주거가 어우러진 복합개발을 유도한다.

아울러, 아파트 지구나 택지개발지구 같이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의 경우 개별 단지를 넘어 계획지역 일대 전체를 아우르는 ‘입체적 지구단위계획’으로 수립한다.

 

∥현상설계 공모비 전액, 주민총회비 일부 지원

성냥갑 같은 획일적인 아파트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창의적인 건축디자인을 유도하기 위해 ‘현상설계’를 적용하고, 특별건축구역 등 관련 제도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이미 고덕‧강일지구의 경우 개별 단지별로 현상설계공모를 시행해 다양한 건축디자인 도입을 시도 중이다.

현상설계는 사전 공공기획과 주민참여를 통해 설계지침을 마련하고 공모된 설계안 중 2개 이상을 선정, 조합(추진위)에서 주민총회를 통해 확정하게 된다. 이를 위해 시는 현상설계 공모 비용 전액과 공모안 선정을 위한 주민총회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현상설계 공모비는 1억 원 내외, 국제현상설계의 경우 5억 원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

‘특별건축구역’ 지정을 병행하고, 연면적 20% 이상 특화디자인 설계를 통해 창의적 건축 디자인 효과를 극대화한다. 정비계획 결정 후 이미 설계사가 선정된 단지의 경우, 공공건축가가 자문 등을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도시건축혁신단’과 ‘공공기획자문단’ 구성

서울시는 시민,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과 시범사업을 거쳐 ‘도시‧건축혁신(안)’ 내용을 가다듬고 올 하반기 본격 실행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아파트 정비사업 전 과정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전담조직 ‘도시건축혁신단’이 하반기 중 신설된다. 또, 도시계획위원회 등 정비사업 관련 위원회 위원 중 총 50명 내외로 ‘공공기획자문단’도 구성한다.

시는 향후 서울시 관련 기능‧조직을 모두 통합해 싱가포르의 URA 같이 서울시 도시‧건축 전 사업을 관할하는 공적개발기구로 확대‧발전시킬 예정이다.

‘도시건축혁신단’은 기존 정비계획 결정(심의) 지원을 담당하는 ‘도시계획 상임기획단’에 도시계획‧건축‧교통 등에 대한 종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도시공간 공공기획’, 역사‧경제‧미래‧문화 등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하는 ‘도시공간 전략기획’ 기능을 추가해 확대‧개편한다.

 

∥정비사업 모든 프로세스 공공이 관리 … 민간 자율성 침해 우려

서울시의 이번 도시‧건축 혁신안에 대해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모든 사업진행과정을 서울시에서 컨트롤하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공공지원제로 이름을 바꾼 ‘공공관리’ 역시 ‘지원’보다는 ‘관리감독’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정비사업에 악영향이 더 컸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비사업 현장들은 이번 서울시의 발표가 달갑지 않다.

먼저 사전 공공기획을 통해 정비계획 수립 전에 공공이 정비계획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게 되면 해당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배제된 채 공공성 확보에만 초점을 맞추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진행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사업성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아 사업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파트 조성기준도 문제다. 하나의 단지를 하나의 블록이 아닌 중소블록으로 쪼개면 각종 커뮤니티 시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기 힘들고 주민들의 생활권 역시 분리될 수 있어 효율적 단지배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의 경우 ‘입체적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것은 자칫 추진상황이 다른 개별 사업장의 사업진행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현상설계를 진행할 경우 공모 비용 전액과 공모안 선정을 위한 주민총회 비용 일부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문제는 공모안에 대한 심사를 공공에서 진행한다는 점이다. 공공의 목적에 따라 자율성을 크게 해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일선 현장에서는 성냥갑 아파트를 탈피하고 디자인을 다양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획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최고 35층의 층고규제를 풀고 특별건축구역에 대한 지원책을 늘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현재 정비사업의 문제점 중 상당수는 공공의 규제책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며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민간에 맡겨 자율 경쟁을 유도하면 오히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단지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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