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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이야기 - 독도의 연혁과 분쟁사①
2019년 08월 29일 (목) 11:56:19

   

변우택 이사장 / 사단법인 주거환경연합

독도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당연히 우리나라 영토라고 우리는 마땅히 주장하지만 간교한 일본은 그런 우리의 주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교묘한 국토 침탈행위를 1905년 이래 계속 행하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반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에 격분하여 필자는 이곳저곳에 산재되어있는 자료들을 한 곳에 모아 이 자료를 통해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아가서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독도의 연혁과 분쟁사를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고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자료를 정리하였다.

 

(1)서기 512년 이전

독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년전부터 250만년전까지 약200만년 동안 바다 밑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됐고 울릉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270만년 전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완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독도가 울릉도보다 먼저 생성된 섬이지만 독도는 오랫동안 무인도로 있었다.

512년 신라의 하슬라주(何瑟羅州 : 溟州)의 군주(軍主)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을 신라에 귀속시키기 이전까지 울릉도는 우산국(于山國)이라는 고대부족읍락국의 독립국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를 포함해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다.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집단생활을 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 듯하다. 우산국 사람들은 본토에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왔다.

 
   

(2)신라시대

512(2845, 壬辰) 신라 지증왕13,『三國史記』권4 新羅本紀 4 智證麻立干 13年條, 권44 列傳 4 異斯夫傳, 『三國遺事』

至十三年 壬辰 爲阿瑟羅州軍主 謨幷于山國 謂其國人愚悍 難以威降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船 抵其國海岸 詐告曰 汝若不服 則放此孟獸踏殺之 其人恐懼則降

6월 신라는 하슬라주(何瑟羅州:강릉지역)의 軍主 異斯夫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케 하다. 이사부는 목우사자(木偶獅子)를 무기로 써서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그 후 우산국은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바쳤다. 삼국사기에 우산국은 溟州 正東의 섬鬱陵島를 일컫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같은 기사에 于陵島(羽陵)라고 기록되어 있다.

 
   

(3)고려시대

-930(3263, 庚寅) 고려 태조 13,『高麗史』권1 太祖世家 1

8월 于陵島에서 사절로 백길, 토두 두 사람을 보내어 조정에 공물을 바쳤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 백길에게는 정위, 토두에게는 정조라는 벼슬을 내렸는데 그때가 고려 태조 왕건이 길창(안동)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을 무찌른 해이다.

 

-1018(3351, 戊午) 고려 현종 9『高麗史』 권4 顯宗世家 1

11월 于山國이 여진족의 침략을 받고 廢農하게 되었으므로 李元龜를 파견하여 농기구와 물품을 보내다. 이때부터 울릉은 한동안 쇠퇴하였다.

 

-1019(3352, 己未) 고려 현종 10『高麗史』권4 顯宗世家 1

7월 여진족의 침략을 피해 본토로 도망 와 있던 우산국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려 하다.

 

-1022(3355, 壬戌) 고려 현종 13,『高麗史』권4 顯宗世家 2

7월 여진족의 침략을 피해 본토로 도망 와 있던 우산국사람들을 禮州(당시 평해·영덕·영양 등지를 관할하는 지방행정 조직체)에 정착하게 하다.

 

-1032(3365, 壬申) 고려 덕종 1,『高麗史』 권5 德宗世家

우산국 대신 우릉(于陵 또는 羽陵)으로, 宇山國主 대신 于陵城主로 이름을 바꾸다. 이로써 우릉도와 우산도(독도)로 구성된 우산국이 중앙정부의 관할아래 들었음을 뜻한다. 11월에 羽陵城主는 아들 夫於仍多郞을 보내 토산품을 바치다.

 

-1141(3474, 辛酉) 고려 인종 19,『高麗史』 권17 仁宗世家 3

7월 溟州道監倉使 李陽實이 울릉도(蔚陵島)로 사람을 보내 특이한 과실과 나물을 채취하여 왕실에 바치다.

 

-1157(3490, 丁丑) 고려 의종 11, 『高麗史』 권18 毅宗世家 2

5월 우릉도(羽陵島)에 주민을 이주시키려 溟州道 監倉 殿中內給事 金柔立을 보내 섬을 조사시키다. 섬의 중앙 꼭대기(성인봉)에서 동으로 1만여보, 서로 1만3천여보, 남으로 1만 5천여보, 북쪽으로 8천여보에 달하고 마을이 7군데가 있음을 보고하다.

 
   

-1197(3530, 丁巳) 고려 명종 27

동쪽지역에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으나 풍파가 심하여 서쪽으로 이주하게 하다.

 

-1243(3576, 癸卯) 고려 고종 30, 高麗史』권129 列傳 叛逆 3 崔忠獻 附 崔怡傳

대몽항쟁 중 崔怡에 의해 울릉도(蔚陵島)로 주민을 이주시켰으나 익사자가 많이 생겨 이주정책이 중지되다.

 

-1246(3579, 丙午) 고려 고종 33,『高麗史』 권23 高宗世家 2

5월 國學學諭 權衡允과 及第 史挺純이 蔚陵島 安撫使로 임명되다.

 

-1273(3606, 癸酉) 고려 원종 14,『高麗史』권27 元宗世家3, 권130 列傳 叛逆4 趙附 李樞傳

元이 李樞를 파견하여 伐木을 요구하였으므로, 2월 簽書樞密院事 許珙을 울릉도 작목사(斫木使)로 임명하여 함께 가게 하다. 벌목은 고려의 요청에 의해 곧 중지되다.

 

-1326(3659, 丙戌) 고려 충목왕 2, 『高麗史』 권37 忠穆王世家

東界의 芋陵島人이 來朝하다.

 

-1379(3712, 己未) 고려 우왕 5, 『高麗史』 권134 叛逆 6 辛禑 1

7월 倭가 武陵島에 들어와 보름동안 머물다가 물러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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