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기 512년 이전
독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년전부터 250만년전까지 약200만년 동안 바다 밑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됐고 울릉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270만년 전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완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독도가 울릉도보다 먼저 생성된 섬이지만 독도는 오랫동안 무인도로 있었다.
512년 신라의 하슬라주(何瑟羅州 : 溟州)의 군주(軍主)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을 신라에 귀속시키기 이전까지 울릉도는 우산국(于山國)이라는 고대부족읍락국의 독립국가를 이루고 살았는데 그 영역은 가시거리 내에 위치한 독도를 포함해 울릉도 주변의 소도서에 이르렀다.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지형 및 토양으로 보아 반어반농집단생활을 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문화 수준이었으나 신라 사람과 언어가 통하고 왕래도 있은 듯하다. 우산국 사람들은 본토에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며 살아왔다.
(2)신라시대
512(2845, 壬辰) 신라 지증왕13,『三國史記』권4 新羅本紀 4 智證麻立干 13年條, 권44 列傳 4 異斯夫傳, 『三國遺事』
至十三年 壬辰 爲阿瑟羅州軍主 謨幷于山國 謂其國人愚悍 難以威降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船 抵其國海岸 詐告曰 汝若不服 則放此孟獸踏殺之 其人恐懼則降
6월 신라는 하슬라주(何瑟羅州:강릉지역)의 軍主 異斯夫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케 하다. 이사부는 목우사자(木偶獅子)를 무기로 써서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그 후 우산국은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바쳤다. 삼국사기에 우산국은 溟州 正東의 섬鬱陵島를 일컫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같은 기사에 于陵島(羽陵)라고 기록되어 있다.
(3)고려시대
-930(3263, 庚寅) 고려 태조 13,『高麗史』권1 太祖世家 1
8월 于陵島에서 사절로 백길, 토두 두 사람을 보내어 조정에 공물을 바쳤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 백길에게는 정위, 토두에게는 정조라는 벼슬을 내렸는데 그때가 고려 태조 왕건이 길창(안동)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을 무찌른 해이다.
-1018(3351, 戊午) 고려 현종 9『高麗史』 권4 顯宗世家 1
11월 于山國이 여진족의 침략을 받고 廢農하게 되었으므로 李元龜를 파견하여 농기구와 물품을 보내다. 이때부터 울릉은 한동안 쇠퇴하였다.
-1019(3352, 己未) 고려 현종 10『高麗史』권4 顯宗世家 1
7월 여진족의 침략을 피해 본토로 도망 와 있던 우산국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려 하다.
-1022(3355, 壬戌) 고려 현종 13,『高麗史』권4 顯宗世家 2
7월 여진족의 침략을 피해 본토로 도망 와 있던 우산국사람들을 禮州(당시 평해·영덕·영양 등지를 관할하는 지방행정 조직체)에 정착하게 하다.
-1032(3365, 壬申) 고려 덕종 1,『高麗史』 권5 德宗世家
우산국 대신 우릉(于陵 또는 羽陵)으로, 宇山國主 대신 于陵城主로 이름을 바꾸다. 이로써 우릉도와 우산도(독도)로 구성된 우산국이 중앙정부의 관할아래 들었음을 뜻한다. 11월에 羽陵城主는 아들 夫於仍多郞을 보내 토산품을 바치다.
-1141(3474, 辛酉) 고려 인종 19,『高麗史』 권17 仁宗世家 3
7월 溟州道監倉使 李陽實이 울릉도(蔚陵島)로 사람을 보내 특이한 과실과 나물을 채취하여 왕실에 바치다.
-1157(3490, 丁丑) 고려 의종 11, 『高麗史』 권18 毅宗世家 2
5월 우릉도(羽陵島)에 주민을 이주시키려 溟州道 監倉 殿中內給事 金柔立을 보내 섬을 조사시키다. 섬의 중앙 꼭대기(성인봉)에서 동으로 1만여보, 서로 1만3천여보, 남으로 1만 5천여보, 북쪽으로 8천여보에 달하고 마을이 7군데가 있음을 보고하다.
-1197(3530, 丁巳) 고려 명종 27
동쪽지역에 이주하여 농사를 지었으나 풍파가 심하여 서쪽으로 이주하게 하다.
-1243(3576, 癸卯) 고려 고종 30, 高麗史』권129 列傳 叛逆 3 崔忠獻 附 崔怡傳
대몽항쟁 중 崔怡에 의해 울릉도(蔚陵島)로 주민을 이주시켰으나 익사자가 많이 생겨 이주정책이 중지되다.
-1246(3579, 丙午) 고려 고종 33,『高麗史』 권23 高宗世家 2
5월 國學學諭 權衡允과 及第 史挺純이 蔚陵島 安撫使로 임명되다.
-1273(3606, 癸酉) 고려 원종 14,『高麗史』권27 元宗世家3, 권130 列傳 叛逆4 趙附 李樞傳
元이 李樞를 파견하여 伐木을 요구하였으므로, 2월 簽書樞密院事 許珙을 울릉도 작목사(斫木使)로 임명하여 함께 가게 하다. 벌목은 고려의 요청에 의해 곧 중지되다.
-1326(3659, 丙戌) 고려 충목왕 2, 『高麗史』 권37 忠穆王世家
東界의 芋陵島人이 來朝하다.
-1379(3712, 己未) 고려 우왕 5, 『高麗史』 권134 叛逆 6 辛禑 1
7월 倭가 武陵島에 들어와 보름동안 머물다가 물러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