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증액 관련 분쟁방지 도모 … “현실은 서류제출 불가로 실효성 떨어져”

작년 11월 재건축․재개발사업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 공사비 증액 논란을 잠재우고자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기준’이 제정․시행됐다. 최근 둔촌주공 등 몇몇 사업장에서 공사비 검증 절차가 진행된다는 소식과 함께 이를 통해 공사비 감액에 성공한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과연 공사비 검증 조치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것일까?

 

∥정비사업의 문제적 단어, 공사비 증액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에 있어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분쟁은 오랫동안 골치를 썩여온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시공사 선정시 체결한 가계약과 비교해 본계약 시점에서 거의 모든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한다. 설계변경, 마감재 상향, 사업지연, 물가상승 등의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으로선 늘어난 공사비 부분을 명확하게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조합은 불만과 분노를 삭인 채 시공사 요구를 수용하거나 아니면 시공사를 교체하는 극약처방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시공사 교체가 극약처방인 까닭은 그로 인한 사업지연 뿐만 아니라 새로이 선정한 건설사가 더 나은 공사비를 제시할 것이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소간 증액을 감수하더라도 시공사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또한 시공사와의 공사비 협상과정이 교착상태에 빠져 장기화될 경우 조합 내부 갈등으로 확산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래저래 공사비 증액은 논란의 공장인 셈이다.

 

∥국토부, 작년11월 세부 ‘검증기준’ 제정․시행

정부는 위와 같은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고자 작년 4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제29조의2 ‘공사비 검증 요청’을 신설했다. 하위 규정으로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기준’을 작년 11월 시행했다. 검증기준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검증대상은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1/5 이상이 사업시행자인 조합에 검증 의뢰를 요청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공사비 증액 비율(생산자물가상승율 제외)이 사업시행인가 이전 시공사를 선정한 경우 10% 이상이거나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해 5% 이상 늘어난 경우다.

세 번째는 상기 두 가지 경우에 따른 공사비 검증이 완료된 이후 증액 비율이 3% 이상인 경우에 해당한다. 검증대상에 부합하면 조합은 한국감정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검증을 요청해야 한다.

공사비 검증을 신청해야 하는 조합은 관련 서류를 첨부해 검증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예의 서류로는 ▲공사비 목록 및 사유서 ▲사업개요 및 추진경과, 단계별 도급계약서, 시공자 입찰관련 서류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서등 인·허가 관련 서류 ▲변경 전·후 설계도 및 시방서(특기시방 포함), 지질조사서, 자재설명서 등 ▲공사비 총괄표, 변경 전·후 공사비 내역서, 물량산출서, 단가산출서(일위대가, 공량산출서, 단가산출서에 준하는 근거서류) 등 공사비 내역을 증빙하는 서류 ▲기타 검증기관이 요구하는 검증에 필요한 서류 등이 있다.

검증기관은 전체 또는 증액 공사비가 1천억원 미만인 경우 접수일로부터 60일 이내에, 1천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75일 이내에 검증결과를 신청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 10일 범위 내에서 1회 연장할 수 있다. 제출한 서류의 내용이 불충분하거나 사실과 다른 경우 신청인에게 문서 등으로 보완을 요청해야한다.

 

∥“착공 이전 현장에선 쓸모없다”

최근 보도된 바에 따르면 둔촌주공을 비롯해 몇몇 사업장에서 공사비 검증 요청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검증시스템의 무용성(無用性)을 나타내는 사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성남의 A재개발구역이 관리처분계획 수립절차를 추진하고 있다. 2016년에 시공사를 선정한 A구역은 관리처분에 앞서 공사 본계약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에서 설계변경과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지만 조합은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과하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

이에 조합원 일부가 전체 조합원 1/5 이상의 동의를 얻어 공사비 검증을 요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A구역 상황에서 검증을 신청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A구역 조합에 따르면 검증을 신청하기 위해선 설계도와 시방서를 비롯해 공사비 총괄표와 내역서, 물량산출서 등 각종 도면과 자료제출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같은 도서가 실제 착공 절차에 도달해야만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A구역 조합장은 “공사비 검증기준에 따른 도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별도 용역업체를 선정해야 했다”면서 “용역비 십수억원이 소모될 뿐만 아니라 용역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검증신청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용역비용도 문제지만 더욱 아찔한 부분은 용역결과를 받기까지 1년 이상 필요하다는 점이다.

시공사와 치열한 협상전을 벌이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검증기간을 고려하면 1년 6개월 이상 사업이 지연될 것이다. 그리고 사업지연에 따른 공사비 상승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결국 공사비 검증 절차는 공사 착공 단계에 접어든 사업장에서나 실효성을 지닌다는 의미다.

문제는 공사비 검증이 가장 절실한 시기가 공사비 증액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본계약 체결 시점이라는 것이다. 즉 관리처분을 위한 공사비 협상 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 정작 이때를 위해 마련된 검증제도가 실제론 쓸수가 없는 모순인 셈이다.

 

∥“검증신청시 필요서류 개선해야”

공사비 검증이 제도화됨에 따라 일선 조합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사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마땅한 해법이 없어 전전긍긍했던 과거와 달리 믿은 언덕이 생겼기 때문이다. 검증수수료도 증액된 공사비에 비하면 소액이어서 크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관리처분 단계를 넘어 착공 단계에 접어든 사업장에서나 실효성을 갖는 부분은 개선돼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검증 기준에서 명시한 몇몇 도서의 경우 실제 공사가 진행돼야 검토가 가능하기 때문에 조합 여건에 따라 준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이에 대한 개선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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