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당시 426억원→50억 … 조합 “배상액 줄었지만 내용은 납득 어려워”

방배5구역이 계약해지를 결정한 기존 사업단과의 손해배상 항소심 결과 기존 426억원에서 50억원으로 배상액을 크게 줄임에 따라 향후 사업추진에 탄력을 더할 전망이다.

지난 28일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가 지에스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이 방배5구역 재건축조합을 대상으로 제기한 시공사지위확인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결과는 방배5구역 조합이 3개사에게 50억원 규모의 배상액을 지급하고, 배상액을 초과하는 청구에 대해서는 모두 기각한다고 밝혔다. 작년 8월말 1심 당시 재판부는 조합에게 426억원 규모의 배상액 지급을 판결한 바 있다.

비록 1심 결과를 뒤엎는 완벽한 승소는 아니지만 4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손실을 50억원 수준으로 줄인 부분은 조합으로선 환영할만한 성과다. 이와 관련 조합측은 “1심에 비해 손실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위안이 되지만 법리적인 부분에서 사실상 1심과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불만족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조합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기존 시공사측에서 해야 할 의무인 매도청구 소송비용을 대여하지 않아 비롯된 것으로서, 계약해제 근거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금액조정에 그쳐 조합으로선 매우 억울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상대방이 3심을 진행한다고 한다면 제대로 된 법리적 해석 절차를 거쳐 정의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분쟁의 씨앗, 사업비 대여 ‘거부’

2012년 5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조합장=김만길)은 2013년 7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이후 2014년 6월 지에스건설,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등 3개사로 이뤄진 프리미엄사업단(이하 사업단)을 시공사로 선정했었다.

조합은 2016년 3월경부터 사업단에게 수차례에 걸쳐 매도청구소송 관련 매매대금 등 사업비 대여를 요청했지만 사업단은 조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조합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사업비 대출을 받고자 사업단의 대출보증을 요청했지만 대출조건에 대한 의견차가 심해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2017년 2월 현금청산자 일부가 조합의 매도청구권 행사로 체결된 매매계약에 대해 대금 미지급을 원인으로 해제의사를 통지하게 됐다. 사업단의 비협조로 인해 사업비 대여는 물론이고 대출보증마저 막힌 조합은 특단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공사계약 해제 등을 안건으로 대의원회 개최를 준비하게 됐다.

이에 따라 대의원회 개최 공고와 함께 공사계약에 의거 매매대금 지급에 필요한 사업비 대여를 요청했지만 사업단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또한 조합이 자체적으로 사업비 조달을 위해 대출받을 금융기관을 선정했지만 사업단이 대출채무에 대한 보증조건을 수용하지 않아 조합의 사업추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됐다.

이에 조합은 지분제 관련 공사계약의 문제점, 사업단의 사업비 대여 거부 행태, 계약해제시 손익분석 등을 다룬 조합원 설명회를 개최한 후 2017년 3월 대의원회에서 계약해제 안건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의결하게 됐다.

한편 사업단은 17년 3월 7일 조합에 대한 대여금 상환채권을 피보전권리로 대여금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했고, 13일 가압류 결정이 이뤄졌다. 며칠 후인 3월 18일 조합은 정기총회를 개최해 공사계약 해제를 의결했고, 4월 14일 해제 의사를 사업단에 통지했다.

2017년 5월 12일 사업단은 조합의 공사계약 해제가 부적법하다는 이유를 들어 시공사 지위 확인 소송과 함께 조합의 계약해제가 민법에 따른 임의해제라는 이유를 들어 대여금의 반환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됐다.

 

∥“계약해제 부적법, BUT 사업단 신의성실 의무 저버려”

“공사계약의 해제 통지가 엄격한 해제요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히 이뤄져 부적법하게 됐지만 조합이 이 같은 의사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사업단이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사정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 28일 항소심 결과가 1심과 달리 배상액이 크게 줄어든 까닭으로 사업단이 시공사로서 지켜야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사업단은 시공사로서 재건축사업의 성공을 위해 그 시작이라 할 사업비 조달에서부터 마무리라 할 분양에 이르기까지 주요 역할을 수행하는 당사자로서 조합과 적극적이고 충실하게 협조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비 대여 의무와 보증의무 이행 경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사업단은 (의도적으로 조합의 재건축사업 진행을 방해할 의사는 아니었더라도) 사업비로 전환된 입찰보증금 외에 조합이 대여를 요청한 매매대금만 해도 250억원 규모의 비용을 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사업단은 대여의무 이행에 관한 법리적 쟁점인 매도청구소송 판결 확정 여부, 증빙자료의 미비, 현금청산인들의 현실적 이행제공 여부를 들어 피고의 대여요청에 불응했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사업단의 자금에 의해 사업비를 대여하기 보다는 조합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사업비 대출을 받도록 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당장 집행이 임박하지 않은 매매대금의 지급을 보류했다는 것. 더군다나 조합의 사업비 대출과 관련해 상당 기간 동안 사업단이 제안한 대출조건을 관철시키려 조합과 대립했다고 부연했다.

한편 조합은 사업단의 입장을 배려하면서도 조속히 사업을 진행해야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매도청구소송의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조속한 사업진행을 위해 가능한 일부 현금청산인에 대해서라도 매수절차를 진행하고자 원고들의 사업비 조달을 절실히 기다리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사업단도 이런 조합의 입장과 조합이 필요로 하는 사업비 규모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사업비 대여와 조합의 사업비 대출이 모두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일부 현금청산인들이 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예고에 이르게 됐고, 조합은 사업단의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를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무소불위’ 건설사 횡포 사라지나?”

계약해지시 ‘신의성실의무 이행여부’ 주요 기준 부각돼

“세상이 아무리 힘의 논리로 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시공사의 만행이 여전하고, 힘으로 쥐락펴락 하던 것도 시대가 바뀌면 따라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무리 사업이라지만 상도라는 것도 있고, 신의성실이 있는 건데. 참 착잡합니다.”

정비사업에서 시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합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방법도 시공사가 거부할 경우 이를 강행할 수 있는 조합이 얼마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막강한 자본력과 수십년간 경력을 닦아온 건설사를 열세인 조합이 당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28일 방배5구역과 기존 시공사간 계약해제 관련 손해배상을 둘러싼 항소심 결과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절차상 하자로 인해 계약해제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해도 시공사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해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업비 대여를 비롯해 시공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거나 또 다른 귀책 사유가 시공사에게 있는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처 시공사를 해지한다면 별다른 손해를 입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즉 조합이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시공사를 좌우할 칼자루를 쥘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방배5구역의 한 관계자는 “기존 시공사측에서 처음부터 미안하게 됐다며 전향적으로, 성실하게 조합을 대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힘의 논리로 조합을 찍어 누르려고 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를 꺽어줘야 한다”고 밝히기도.

이번 방배5구역 사례는 시공사와 분쟁이 발발한 조합에게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견 계약해지로 인해 일부 혼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시공사로서도 과거처럼 조합의 의견을 묵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사업주체인 조합의 행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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