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민간주도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3가지 규제개선 과제

∥정비구역 지정, 해제 관련 규제개선 : 원하는 지역은 도와주고, 필요한 구역은 지정해야

최근 서울시의 정비사업 정책은 ‘하기로 했던 곳’, ‘하고 싶은 곳’을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2∼2019년 총 683개 정비구역 중 394개 지역(예정구역 포함)이 해제되었다.

일부 지역은 법률에서 위임한 범위를 넘어서는 조례에 근거하여 무리하게 해제되기도 하였고, 다수 주민이 계속 추진을 요구해도 지자체장 직권으로 사업구역이 해제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밖에 서울시의 의도적인 사업 지연으로 해제나 사업무산 위기에 처해 있는 곳도 다수 존재한다.

반면 신규 정비구역 지정은 매우 제한적이다. 해제된 지역의 재지정 또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2012년 이래 서울시 신규 정비구역(주택 재개발, 재건축) 지정은 83곳에 그치고 있으며, 특히 재개발사업의 경우 8곳에 그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정비예정 구역이거나 재정비 촉진지구 내 존치정비 또는 존치관리 구역이었으며, 순수하게 신규로 지정된 정비구역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다.

정비구역이 해제되면 해당 지역은 급속한 난개발(특히 ‘빌라화’)이 진행된다. 또한, 신축과 구축 주택가격이 동반 상승하여 역설적으로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충분한 계획과 대안 없는 무분별한 정비구역 해제는 올바른 도시정책 방향이라고 볼 수 없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아래와 같은 3가지 분야에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정비구역 해제 요건의 강화가 필요하다. 정비구역이 크거나, 사업성이 낮거나, 갈등이 심한 지역의 경우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부여하고 있는 시간 내에 사업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비구역 해제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자체장이 자의적으로 사업구역을 해제할 수 없도록 일몰제 연장 조건을 법률에 명시하고, 요건 만족시 지자체장이 이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재량행위 → 기속행위로 변경).

정비사업이 필요하거나 주민들이 원하는 지역은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비사업 신규 / 재지정 요건을 완화하고, 정비예정구역제도를 재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허가 관련 규제개선 : 원칙 있고 예측 가능하며, 효율적인 인허가 절차 필요

최근 특히 강남권 재건축사업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 불안을 이유로 정비사업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예로 잠실 5단지의 경우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국제설계공모 등 서울시에서 요구한 조건을 모두 수용했으며, 그 결과 서울시 또한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로 최종 결정을 위임하는 등 사실상 심의가 통과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8년 하반기 서울 부동산시장이 불안해지자 서울시는 이후 심의에 안건을 상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업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

유사한 사례는 여의도, 압구정, 은마아파트 등 다수 강남권 재건축사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자체의 이러한 행위는 행정권 남용 및 과도한 개인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서울시는 사유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심의 상정 지연, 계획수립 지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의적으로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는 행정권 남용행위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부동산시장 불안이 인허가 지연의 사유라고 한다면, 그 수단이 적법한지,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한지(즉, 실제로 부동산시장 안정 효과가 있는지)와 민간사업인 재건축사업을 지연시키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 권리 침해의 정도가 지나치지 않는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불합리한 인허가 행정은 강남권 재건축사업을 넘어 정비사업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불필요한 사업 지연을 초래하는 핵심 이유로 꼽히고 있어 인허가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요구된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5·6 공급대책에서 공공참여를 통해 정비사업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공공이 참여한다고 해도 도시정비법에 명시된 사업절차가 생략되지는 않는데, 그렇다면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는 왜 하지 않았나?’를 고민해야 한다.

추진위원회 승인에서 관리처분계획 승인일까지 불과 12개월여 만에 추진됐던 가재울뉴타운 5구역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 지자체장의 의지만 있다면 사업추진 속도를 충분히 높일 수 있다. 정비사업 인허가 과정에 불필요한 지연을 야기하는 요소가 없는지에 대한 검토 및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부당한 이유로 인한 정비사업 절차 지연을 방지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

법률에 심의 기간을 명시하고, 인허가 지연 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부당한 법 집행으로 손해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적절한 배상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건축, 도시, 경관 등 유사 위원회를 통합하여 심의하는 등 통합심의 도입을 통한 심의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

공정하고 수준 높은 심의를 위한 심의위원 선정도 필요하다. 지자체의 ‘코드’에 맞는 전문가 위주 선정을 지양하고,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양한 시각을 대변할 수 있는 심의위원 풀(pool)을 구성해야 한다.

 

∥공공기여 관련 규제개선 : 정당하고 적절한 수준의 공공기여를 통해 win-win 추구해야

서울시는 정비사업에만 적용되는 별도의 용적률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정비구역에서는 타 지역 대비 3종 일반주거지역 기준 40%p의 용적률을 무조건적으로 감(減)하여 시작하고(기준 용적률), 공공기여 등 일정 기준 만족시 추가 용적률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른 3종 일반주거지역 최고 용적률은 250%이나, 정비구역으로 지정시 세대수나 용적률 증가 여부 등과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210%로 40%p가 감소한다. 즉, 일단 용적률을 깎고 시작해 인허가권을 활용해서 최대한의 공공기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비사업에만 적용되는 현 용적률 체계에 대한 정당성 및 형평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민간사업으로 분류되는 재건축사업에 있어, 현 용적률 체계의 정당성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재건축사업은 기본적으로 기반시설이 양호한 곳의 공동주택을 ‘집주인들(조합)이 공동으로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 행위’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벌칙성 용적률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한지, 형평성에 맞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현 용적률 체계의 부정적 외부효과와 정책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현 용적률 체계 속에서 용적률이 높은 단지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리모델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리모델링 사업은 기반시설 확충이 전혀 동반되지 않고, 여기에 더해 분양주택 및 임대주택 공급, 도시경관 개선, 안전성, 주거환경 개선 만족도, 자산가치 상승 효과 등이 재건축에 비해 낮으며, 비용 절감 효과 또한 크지 않다.

즉, 공익과 사익 향상의 양 측면에서 리모델링은 재건축사업 대비 비교열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 체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추진되는 리모델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 체계 속에서 추진될 수 있는 소수 사업성이 좋은 단지의 재건축사업이 종료되고 나면, 나머지 사업성이 좋지 않은 다수의 고밀 노후 아파트는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향후 가구 수 감소가 본격화되거나 부동산시장이 침체될 시에도 사업 추진이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서울시가 임대주택 인수 시 지급하는 인수가격(표준건축비)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표준건축비는 2008년 도입 후 2차례 인상에 그치고 있음. 이에 따라 서울시가 조합으로부터 인수시 지급하는 가격은 조합이 건설회사에 지급하기로 한 최초 도급가 대비 70% 선에 그치고 있다. 6개 단지 검토 결과 설계변경 시 시공비가 상승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조합이 실제로 지급하는 금액은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먼저 용적률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 공정한 출발, 인센티브를 통한 공공기여 유도를 위해 시작은 공정하게 250%에서 시작하되, 공공기여 정도에 따라 추가로 용적률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개편하여 win-win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표준건축비의 현실화도 필요하다. 조합이 최소한 손해는 안 볼 수 있도록 비용 인상 요인을 감안해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태희 부연구위원 / 건설산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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