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 이원화로 제도적 기반 마련 미흡 … 입주자, 사후관리 필요성 인식해야

본지는 지난 호에서 공동주택에서 화재와 같은 재난이 발생할 경우 대피할 수 있는 피난기구에 대해 살펴보았다. 향후 3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주택시장 트렌드를 고려할 때 대피공간과 같은 기존 피난시설로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하향식 피난구, 즉 피난사다리와 같은 새로운 방안이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보았다. 이번 지면에서는 피난사다리의 유지·관리 측면에서 문제점과 개선할 부분을 다뤄보기로 한다.

 

○ 교육 사례 : 고덕 래미안힐스테이트 입주전 관리사무소에서 피난사다리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다.

∥피난사다리의 효용성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고층 아파트가 대세를 이루는 현재 대피공간이나 고가사다리와 같은 기존 피난기구는 그 효용성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뛰어난 공간 활용성과 조작의 간편성 등을 갖춘 피난사다리가 밀폐된 구조의 아파트 공간에서 가장 이상적인 피난기구로 평가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향식 피난사다리는 아파트 발코니 또는 건물 복도 등의 바닥 슬라브에 설치하는 피난기구를 말한다. 화연의 진행방향이 상부로 이뤄지는 특성상 아랫집은 화연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된다. 이에 화염 및 연기와 같은 위험요소를 배제할 수 있으며, 옥외가 아닌 옥내에서 피난이 이뤄지기에 사용자에게 공포감을 주지 않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조작의 간편성 등으로 인해 사용교육을 받지 않은 무경험자도 충분히 가능한 범용성을 갖고 있다.

 

○ 적체 및 방해 사례 : 피난구 상부 및 하층부 물건 적체로 인해 피난구 개폐가 어려운 상황.

∥피난사다리 도입 과정

피난사다리는 2006년 서울 서초구 소재 KORTRA 외국인 창업지원센터 건립시 최초 적용됐다. 당시 피난사다리를 통해 화재에 의한 인명피해를 면할 수 있었던 외국인이 신축 과정에서 하향식 피난구를 강력하게 요청했고, 각 층별로 대피구역내 설치·운영한 것이 국내 최초의 사례다.

공동주택에 적용된 것은 2010년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인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부터다. 갤러리아포레 건축심의 당시 45층의 초고층 건축물인 점을 고려해 기존 법적규정인 대피공간 만으로는 화재나 비상시 피난할 수 있는 여건이 제한된다는 의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사다리차량의 경우 15층 높이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하고, 대피공간에서 장기체류하는 경우 외부 화염이나 연기로 인한 인명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 이에 사실상 존립의미가 없는 무용한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안으로 각 세대별로 바로 아래층 세대로 통하는 피난사다리를 대피공간 내에 설치할 것을 조건으로 심의가 통과돼 아파트 최초로 하향식 피난구가 설치됐다.

 

○ 적체 및 방해 사례 : 피난구 상부 및 하층부 물건 적체로 인해 피난구 개폐가 어려운 상황.

∥피난사다리, 사후 유지관리의 중요성

(사)한국피난기구협회(회장=문기채)에 따르면 갤러리아포레를 필두로 공동주택시장에서 피난사다리는 2010년부터 10년간 35만대 정도 공급된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폭발적인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저가 수주에 따른 함량 미달의 제품이 시장 전반에 공급되고 있어 문제로 떠오른다.

(사)한국피난기구협회 박상욱 사무국장은 “기술력이 부족한 국내 제품들 중 몇몇은 해치(수납케이스)에 디자인을 입혀서 피난사다리의 본질적 목적과 상당히 동떨어진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며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것처럼 보여지더라도 위급 상황에서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사다리 자체의 성능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성능이 검증된 제품을 설치하는 것만큼이나 설치 후 사후관리 시스템 구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통상 피난사다리는 평상시엔 사용되지 않는다. 이에 적지 않은 입주자가 발코니 바닥면에 설치되는 상부 덮개 부분과 그 주변, 그리고 사다리가 펼쳐지는 하부에 물건을 적재하고 있다. 이 같은 장애물이 존재할 경우 위급 상황시 사용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입주자를 대상으로 사용법과 관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박상욱 사무국장은 “위급상황시 피난사다리가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평상시에도 언제나 사용가능하도록 입주자들이 관련 사항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면서 “입주자대표회의나 정비사업조합과 같은 입주자 단체가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덕 래미안·힐스테이트의 경우 조합에서 입주 전 관리사무소에 교육용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해 입주민이 직접 사용법을 숙지하고 몸소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이를 위해 피난사다리의 사용교육 의무화를 아파트 관리규약에 반영하기도 했다”며 모범사례를 밝히기도 했다.

 

○ 하자 사례 : 설치 후 제품하자로 인해 피난사다리를 제대로 펼칠 수 없는 모습.

∥제도적 뒷받침의 필요성

현재 하향식 피난구에 대한 제도적 기반은 건축법과 소방법에 의해 다뤄지고 있다. 다만 하향식 피난구에 대한 필요성을 반영해 설치 및 성능 기준에 치중할 뿐 사후 유지관리 부분에 대해서는 제반 규정이 미미하다.

박상욱 사무국장은 “현재 하향식 피난구 관련 법령이 건축법과 소방법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유지관리 주체가 불분명하다”면서 “관련 사항을 문의해 봐도 담당 공무원이 마치 자기 소관이 아닌 것처럼 대응하고 있어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잠깐 인터뷰 - 사단법인 한국피난기구협회 박상욱 사무국장

“철저한 사후관리 위한 법제화 필요하다”

 

하향식 피난구는 평상시엔 사용하지 않고 화재나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제품이다. 발코니 바닥면에 설치하는 특성상 상부 덮개 위, 피난사다리 주변, 피난사다리가 펼쳐지는 하층부에 장애가 되는 물건이 있을 경우 정작 긴급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입주자를 대상으로 사용법과 관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입주 후 교육이나 관리에 소홀한 곳이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박상욱 사무국장은 “화재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하여도 사용법을 모르거나, 제품의 하자 및 고장으로 인해 사용을 못하거나, 피난사다리 주변에 선반 제작 및 고정식·이동식 구조물·중량물 등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면서 “위급 상황에서 정작 사용을 못한다면 안전을 목적으로 설치하고도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국내에서는 입주 후 관리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초고층 아파트가 더욱 증가하는 추세에서 충분한 교육과 철저한 사후관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절실한 이유다.

박 사무국장은 “(사)한국피난기구협회에서 하향식 피난구에 대한 점검 및 사후관리에 대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소방청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 사무국장은 “개선방안으로서 우선 사후관리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고용해 점검 절차를 진행하고, 국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점검 비용을 책정하면 유사시 재난 대비에 효과적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더불어 “사후관리 시스템에 대해 입주자에게 그 필요성을 강하게 인지시켜 하향식 피난구에 대한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정기적으로 교육하고, 시설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기간을 정하여 사후관리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다면 피난기구 도입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밖에도 해외 선진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국내 실정에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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