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8일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확정 발표하였다. 서울에서 20㎞ 떨어진 수도권의 11개 중소도시의 그린벨트 해제 예정 269만평에 택지를 조성, 10만 가구의 주택을 새로 짓는다고 한다. 그리고 8일 시작된 서울시 12차 동시분양아파트 서울1순위 청약에서 43대 1이라는, 92년 10월 동시분양제도가 도입된 이래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였다고 주요 일간지들이 앞을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이 기록이 마치 인간한계에 도전하여 전력을 다하는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기록경신 경쟁장'에서처럼 다음의 동시분양에서 뒤바뀌는 경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유쾌하지 않은 기대감마저 갖게 한다.

수도권에 새로운 택지가 조성되고, 사상 초유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는 주택문제현상은 산업화의 진전으로 인한 도시화의 확대와 인구의 도시집중에 다른 주택공급의 양적 부족과 질적 수준의 저하로 요약될 수 있다.

임오년을 맞아 주택과 주거환경에 관한 주무부처장인 건설교통부장관은 신년사를 통해 "중산층과 서민생활안정을 위하여 주택보급률 100% 달성"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건설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0년의 전국주택보급률은 94.8%이었고, 2002년에는 100%를 달성할 것이라고 한다. 수치상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희망을 가져봄직한 발표내용이다. 그리고 '선계획-후개발' 원칙에 따라 쾌적하고 살기 좋은 국토 환경을 조성할 것이며, 수도권의 효율적인 정비를 위하여 수도권정비계획을 새롭게 수립하고 지역개발을 실효성 있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장관의 신년사발표가 있은 지 몇 일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앞서의 보도내용을 접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생활의 세 가지 요소로 '의ㆍ식ㆍ주'를 꼽는다. 각 국가의 경제적 수준과 문화적 풍토에 따라 각기 이 세 가지 요소의 배열순서가 다르지만, 인간생활의 근본요소라는 사실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인간의 주거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공간의 확보 문제이다. 즉, 주택은 단순한 소비품이 아니라 노동력의 재생산과 경제활동의 생산기초단위인 가족의 유지라는 삶의 본질적 영역을 구성한다. 이런 기본적 인식에서 볼 때, 우리가 연일 접하고 있는 '전ㆍ월세 대란'과 '주택가격의 급등' 현상 등은 오늘을 살고 있는 서민들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우울한 단면을 드러내 준다.

임금상승률을 훨씬 상회하는 물가상승률과 집값 상승률은 무주택자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킨다. 지난해 11월 18일 재정경제부가 내놓은 주요경제지표와 통계청 12월 발표에 의하면 근로자 5인 이상 전 산업체의 평균 임금상승률은 2000년 8월 0.8%(전년동기대비)로 전달 5.1%보다 4.3%포인트나 떨어진 반면 물가상승률은 2000년 대비 4.3% 상승, 집세는 4.2% 상승됐으며, 특히 집세는 2000년과 대비하였을 때 상승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열거된 수치들이 나타내듯 무주택자의 '집 없는 설움'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내집 마련이라는 희망을 건설교통부장관의 주택보급률 100% 라는 신년사에 걸쳐 본다. 그 희망도 전국에 한한 비율이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는….

서울특별시장은 2000년말 서울시 주택보급률이 72.0% 에 이르는 심각한 주택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국내최초로 도시관리 기본틀을 종전의 양적인 확대에서 질적인 향상으로 전환하는 도시계획조례를 제정해서 시행하고 있으며, 새해에는 나홀로아파트의 규제ㆍ주상복합건물의 용도용적제ㆍ일반주거지역의 세분화작업ㆍ한강변 경관관리지구 등 환경친화적인 도시관리사업을 구체화해 나갈 것"이라 강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서울시장의 주택문제에 대한 인식에 '주거안정과 주거환경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려 본다. 환경친화적 도시관리 기본틀이 수도권 11개 중소도시의 녹지공간 훼손 또는 축소로 이어지는 반환경적인 정책수립이 아닌지, 도시계획조례의 지구단위계획시행이 택지고갈상태에 이른 서울시의 주택난 해결과는 매우 먼 거리를 두고 있는 '환경 이데올로기'상의 산물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양적 개발이 아닌 삶의 질과 환경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전환을 이루었다"는 서울시장의 자부 어린 지난해의 평가에, '양과 질의 전화'는 이분화된 인식에 입각한 선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인식과 사실 전개에 토대한 방식으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함을 충언드리고 싶다. 다시 말하면, 주택난의 해결과 주거환경의 개선은 따로 분리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주거안정과 주거환경의 개선이 상호 배타적으로 진행되어서는 결코 주택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삶의 질과 주거의 질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지는 주거안정 또한 삶의 또 다른 손실과 피폐를 가져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구입비와 주거비를 통하여 얻어지는 것은 긴 통근시간으로 인한 생활 및 여가시간의 단축, 교통문제 등으로 인한 노동력 재생산 위기 및 사회적 경제적 손해뿐이다. 집 값의 무서운 상승과 전ㆍ월세대란을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주거안정과 쾌적한 주거환경의 혜택은 특정계층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일 뿐 정부와 서울시장이 말하고 있는 대다수 서민들은 불안정하고 열악한 주거공간을 감수해야만 하는 결과가 빚어질 뿐이다.

이제는, 신년벽두에 의례적으로 발표되던 신년사가 행정 편의적이고 전시적인 평가와 장밋빛 비전제시보다는, 그야말로 오늘의 삶을 부지런히 일구어가고 있는 서민들의 차디찬 생활의 현주소를 명확히 파악하고 '서민들을, 서민들의, 서민들에' 의한 참된 평가와 희망을 제시하는 그들의 인사말을 고대하여 본다.


최태수 / 재건련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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