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영향평가, 새로운 정비사업 규제 현실화?

국가유산청, 영향평가 도입 ‘논란 증폭’ … 조합·서울시의회 “개정안 전면 재검토”

2026-02-13     이현수 기자
9일 세계유산영향평가 관련 토론회에서 김태수 주택공간위원장이 좌장을 맡아 토론을 주재하고 있다.

종묘 앞 세운4구역을 계기로 세계유산 주변 정비사업을 둘러싼 개발 논란이 다른 사업장에도 확산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비사업장 인근에 종묘와 같은 세계유산이 자리할 경우 국가유산청의 입장 여하에 따라 해당 정비사업에 심각한 위협이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228일부터 올 127일까지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재입법예고 했다. 이번 개정안은 개발계획부지 내 세계유산지구가 포함되는 경우 해당 사업의 사업자로 하여금 계획 확정 전 사전검토요청서를 국가유산청에 제출토록 하고, 국가유산청은 해당 사업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통해 사업계획의 보완·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정리하면 세계유산 주변 정비사업에 대해 영향평가를 도입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사업계획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주목할 부분은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사업을 판단하는 세계유산지구의 범위다. 개정안에는 세계유산지구의 범위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처럼 불분명한 기준이 오히려 정비사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허민 국가유산청장의 발언 내용은 논란의 불씨를 당겼다. 그는 세계유산으로부터 100m 또는 500m 이상의 권역 바깥이라도 대규모 건축물 건설, 소음·진동··열 등 환경 저해 행위가 있을 경우 국가유산청장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의무화 내용이 포함된다고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위 발언은 세계유산지구 범위 밖에 있어도 국가유산청의 재량에 따라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정비사업 조합·추진위와 정비사업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서울시의회가 개정안에 강경하게 맞서고 있어 향후 추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모호한 평가기준, 사업 리스크 증폭

지난 9세계유산 주변 주거환경 정비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정비사업에 또 다른 규제장치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은 세계유산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원점에서 검토하기 위함이다. 이 날 토론회는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김태수 위원장 주최로 진행됐으며, 이종환 서울시의회 부의장 등 시의회 핵심 관계자들이 직접 참여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동영상을 통해 이번 개정안의 폐해에 대해 우려의 뜻을 밝혔다.

김태수 위원장은 최근 세계유산인 종묘 앞 세운4구역 개발사업에 대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지구에서 추진하는 모든 정비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청할 수 있도록 세계유산법 시행령을 입법예고 했다면서 문화유산 주변 지역은 현재에도 많은 개발 규제가 있음에도, 이번 개정안의 불명확한 영향평가 요건과 이에 따른 광범위한 규제로 주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을 뿐 아니라 원활한 주택공급에도 차질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토론회는 향후 세계유산 법령이 개정될 경우 서울의 주택공급 위축과 세계유산 주변의 낙후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이 무한정 지연될 수 있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했다면서 서울은 세계유산을 보호하는 책무도 있지만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청년과 신혼부부, 어르신에게 더 많은 양질의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과제 또한 미룰 수 없다며 세계유산의 보존과 주거환경의 개선, 그리고 주택공급의 조화를 아우르는 합리적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정재훈 교수는 세계유산 보호와 주거환경 정비의 갈등은 가치 충돌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로써 반복되고 있음을 알렸다. 보호와 개발이 모두 공공의 가치이지만 이를 조정할 기준이 불분명할 때 갈등이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세계유산과 관련된 영향평가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며 진짜 문제는 평가가 너무 늦은 단계에서 작동하여 비용과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했다. 이에 세계유산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수립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아울러 영향평가의 적용 범위가 문화재 담장 밖으로 사실상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허점을 거론하며, 제도가 장기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재량이 아닌 사전 기준 중심의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주제를 맡은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 구강모 교수는 세계유산 관련 해외 사례를 통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구 교수는 세계유산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도시에서 세계유산을 볼 수 있는지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즉 세계유산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전망대의 개념이 아니라 도시 속의 상징적 건축물로서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국가유산청 적용범위 무한확대, 사실 아냐

세계유산영향평가 관련 세간의 우려에 대해 국가유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적극 해명하는 모양새다. 해당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이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도입하고자 하는 세계유산 영향평가는 개발행위가 세계유산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조사·예측·평가하여, 유산의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도모하고자 하는 제도로써, 개발을 무조건 막고자 하는 제도가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세계유산법률 및 하위법령에 거리 기준을 일률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세계유산 각각의 특성, 입지,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대한 실질적 영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 적용범위가 무한정 확대된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국가유산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정비사업조합 등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영향평가제도의 원론적 도입배경을 반대할 이는 많지 않다. 문제는 이상과 달리 현실에서의 영향평가제도는 규제로서의 기능이 더욱 강하게 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기준 없는 모호한 규정이 오히려 국가유산청의 재량권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악용될 수 있기에 반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조합·서울시의회 개정안, 전면 재검토 촉구

현재 서울시에는 총 10곳의 세계유산이 있다. 그 중 세계유산지구가 지정된 곳은 종묘 1개소로, 나머지 세계유산의 경우 지구지정 범위가 확정되지 않아 국가유산청의 입법예고는 세계유산 인근 지역 정비사업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서울시의회가 밝힌 바로는 세계유산 주변에서 진행되는 개발사업(정비사업 포함)은 총 38, 3만세대에 이른다.

이와 관련 의릉 등 세계유산 2곳이 포진한 성북구 지역 주민 상당수는 이 날 토론회에 참석해 세계유산영향평가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개정안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들은 과거 보존 중심의 주택정책으로 인해 사업추진이 무산됐던 경험을 떠올렸고, 국가유산청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빌미로 정비사업의 가부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기관이 될 수 있다며 불안함을 호소했다.

아울러 수십여 년간 문화재 보전지역 근처에 살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노후·낙후지역으로 방치돼왔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유산을 지키며 보호해왔던 주민들에게 전체를 위해 희생을 강요받아왔다는 억울함도 토로했다.

서울시의회도 정비사업 주민들과 뜻을 모으고 있다.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인해 실제로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주택공급·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행정절차의 중복, 불확실성 확대, 사업 지연 및 비용 증가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것.

세계유산 보존은 국가적 책무이자 미래세대에 대한 약속이지만 그 과정은 도시의 주거안정과 지역발전이라는 공익과 조화를 이뤄야 하며, 중앙정부의 하위법령 개정이 지방자치단체의 고유 권한과 시민의 주거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며 개정안의 철회 혹은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