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재건축이 시작된지도 거의 20년이 다 되었다. 과정을 보면 초기 재건축, IMF외환위기, 2002년 이후 부동산 열풍이 분 시기로 대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3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은 것이 입주시점에서 재건축·재개발 조합장의 ‘동네북’ 신세다. 심지어는 구치소에 수감되는 수모를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엇이 이렇게 조합장을 옭아매고 구속하고 있는 것인지를 필자는 여러 차례 재건축 정산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정비사업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추진위원장 혹은 조합장은 그 지역에서 주민들로부터 믿음을 한 몸에 받는 50∼60대의 존경받고 덕망 있는 어르신이었다. 이분들은 60평생을 살아오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과 삶의 가치를 갖고 반듯하게 생활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분들이다. 그런데 왜 재건축공사가 시작되고 불과 1∼2년 후에는 존경은커녕 온갖 비리의 주범이고 자기이익만을 챙기고 조합원들을 무시한 사람으로, 많은 조합원들에게 비쳐지고, 불만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하루아침에 파렴치한으로 탈바꿈하는 직장이나 사업체가 재건축조합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건축이 뭐 길래 많은 조합장들이 엄청난 인격모독을 당하는 것인가. 거기에는 구조적인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정비사업은 거대한 부동산 개발사업이며, 사업주체인 조합은 부동산개발에 관해 문외한이다.

필자는 정비사업 정산을 하면서 가슴 아프게 느낀 점들을 여기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조합장이 파렴치한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그 이유를. 정비사업은 거대한 이권사업이다. 조합원들이 집과 토지를 투자자금으로 출자하고 부동산개발사업을 하는 행위이다. 개발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분양인데 이미 조합원들이 사전에 분양을 받아놓았고, 공사비에 모자라는 부분은 별도로 조합원들이 분담금으로 이미 약정하여놓고 시작하는, 리스크가 전혀 없는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1000세대 재건축아파트 단지일 경우 세대당 분양금액이 최소한 2억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총 사업비가 2000억 원이 넘는 사업이다. 공사기간도 불과 2∼3년에 끝난다. 간단하게 계산을 해보면 년 700억에서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부동산개발 기업체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는 기업체 사장님과 사업조직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부동산 개발, 기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에는 문외한이면서 덕망 높으신 조합장이 사장이고, 그 다음으로 존경받는 분들이 이사가 되어서 년 매출 1000억 원의 사업을 집행한다. 그러니 재건축사업계획과 설계, 시공, 계약 모든 것을 체크하고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기술과 자격 능력은 애당초 갖지 못한 사장님이 그 회사를 경영하게 되며, 한술 더 떠서 모자라는 기술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전문가를 고용하고 싶어도 사업초기에 그들에게 줄 월급이 없어 고용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꼭 고용할 의지가 있다 하여도 시공사로부터 자금을 차입해서 고용해야하는 상황이다.

구조가 이렇게 되어있으니 어느 시공사가 자기 돈 들여서 시공사 이익을 하나하나 짚어 조합에 되돌려 주려는 건설전문가를 좋아하며 조합장에게 날개를 달아줄려고 하겠는가?

시공사들은 자기들이 건설전문가이고 직원도 많이 있으며 시공경험도 많으니 조합장은 우리를 믿고 조합원들을 설득하여 입주시점에 맞춰 준공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요청한다. 덕망 높으신 조합장은 조합원들의 첫째목표인 정시입주를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건축공사를 준공시키고 조합원들을 입주시킨다. 즉 사업주인 사장님이 전문가의 도움이 전혀 없이, 쓸 수 있는 자금도 없이 2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개발사업을 2∼3년 사이에 끝내려면 얼마나 힘들고 동분서주하여야 했겠는가.

거의 모든 조합장들은 제때에 조합원들을 새 아파트에 입주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거기다가 공사는 시공사가 다 알아서 한다고 사업초기에 장담하였으니 사장님은 믿을 수밖에 없다. 설사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특별히 처리할 방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입주가 되고 나면 많은 조합원들은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부실하고 어느 부분이 하자가 있다고 성토하고 조합장을 불신임하게 된다.

거기에는 조합장이 시공사와 짜고 비리를 저질렀다느니 등등의 유언비어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조합장은 할 말이 없다. 이유는 시공사가 공기에 문제가 있으니 찍으라는 도장은 열심히 찍었지만, 그것이 공사비가 더 나가는지, 조합원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알 수 있는 근거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조합원들의 입주날짜에 대한 압박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산은 명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조합장을 보호한다

이렇게 20여년간 지속되어온 정비사업의 문제점 한 단편만 살펴보더라도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는 한평생 열심히,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아오면서 덕망과 존경을 받았던 조합장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보호해야할 때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조합이 입주와 준공 전후에 정비사업 정산을 전문가에게 의뢰하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

조합장이 몰라서 집행한 것, 시간과 비용에 대한 대안을 못 찾아서 도장 찍은 것, 당연히 옳다고 생각하고 찍은 도장 등등 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뤄진 무수한 행위 자체가 모두 정산의 대상이다. 조합과 시공사 사이에 체결된 공사계약서, 조합정관, 관리처분계획서, 총회회의록, 설계도면, 시방서, 공사일반조건, 공사특수조건, 감리보고서, 공사일지, 시공사 사업참여제안서 등등을 검토 분석하여 명확하고 확실하게 보고서를 만들어 갑과 을의 계약에 따라 손해액을 찾아낸다.

계약의 불공정성을 밝혀 조합이 찾지 못하는 금원을 찾아서 조합원들에게 되돌려주며 조합임원들은 조합원들로부터 그사이의 노고에 대한 표창장과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될 것이다. 더불어 정든 내 보금자리에서 이웃과 정답게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고로 모든 재건축조합은 필히 정산사업을 전문가에게 의뢰함으로써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고 조합장은 자기가 집행한 일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공기에 쫓겨 제대로 조합원들에게 알리지 못한 업무처리에 대하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며 합법적으로 보호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여구호 대표 / (주)케이에스씨엠 건축사사무소

※외부필자의 기고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주거환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