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는 우연히 술집에서 알게 된 박씨와 오후 4시경 강원도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각자의 집을 향해 동행하던 중, 두 사람 모두 술에 많이 취하였던 탓으로 도로위에서 발을 헛딛어 전씨와 박씨는 서로 붙잡고 2미터 아래의 개울로 함께 미끄러져 떨어져 약 5시간가량 잠을 자다가 깨어났다.

두 사람은 도로 위로 올라가려고 하였으나 야간이어서 도로로 올라가는 길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여 개울 아래 위를 헤매던 중 박씨가 넘어져서 후두부타박상을 입어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어렵게 되었고, 전씨는 도로로 나오는 길을 발견하고 혼자 도로위로 올라와서 집으로 가 잠을 잤다. 당시는 영하 15도의 추운날씨였고 머리의 상처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던 박씨는 5시간 후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 경우 근처 민가에 가서 피해자의 구조를 요청하든가 스스로 부상당한 박씨를 데리고 도로위로 올라와서 병원으로 데려가는 등의 긴급구호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사망하게 한 전씨의 형사상 책임을 알아보자.

형법상 유기죄란 거동하기 힘든 노인이나 나이 어린 유아, 질병 등의 사유로 도움을 요하는 사람을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 있는 자가 유기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여기서 부조 즉 도움을 요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자기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자로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동작이 가능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사안별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극빈자라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동작이 가능한 한 부조를 요하는 자가 아니다. 또한 보호의무란 도움을 요하는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어야할 의무를 말하는 것으로 법률상·계약상의 의무에 한한다.

첫째 법률상의 보호의무는 공법인가 사법인가를 묻지 않고 법령에 보호의무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말하며 여기에는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경찰관의 보호조치의무, 도로교통법상의 사고운전자의 구조의무, 민법상 친권자의 자녀에 대한 보호교양의무 등이 있다.

둘째 계약상의 보호의무는 유상·무상을 구별하지 않으며 묵시적인 계약도 포함한다. 여기에는 유아에 대한 육아계약, 환자에 대한 간호계약은 물론, 동거하는 피고용자가 질병에 걸린 경우에도 고용자는 묵시적 계약에 의한 보호의무를 진다.

문제는 형법에서 법률상 또는 계약상 보호의무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외에도 사무관리나 관습·조리에 근거하여도 보호의무를 인정할 수 있는 가에 대해 논의가 있다. 이에 대하여 피해자 보호를 위해 보호의무의 발생근거를 확대시키자는 견해도 있으나, 우리 형법이 법률과 계약으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이를 넓게 인정하여 처벌하려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므로 허용안되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위 사안에서 추운 겨울날 술에 취해 2미터 아래 개울로 떨어진 후 머리를 다쳐 몸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박씨가 도움을 요하는 자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우연히 길을 동행한 전씨에게 박씨를 구조할 의무가 있는 지여부가 문제된다. 영하 15도의 추운날씨에 함께 위험을 당하했으나 혼자 빠져나와 집에 가고, 후에 구조요청조차 하지 않은 전씨에게 도덕적 비난은 별론으로 하고, 두사람은 우연히 동행한 관계에 있을 뿐 전씨가 박씨를 보호해야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는 없으므로 전씨는 유기치사죄의 형법상 책임을 져야할 이유가 없고 무죄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법원 또한 위와 같은 사안에서 "본건에 있어서 원판결이 설시 한대로 피고인과 피해자가 특정지점에서 특정지점까지 가기 위하여 길을 같이 걸어간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서는 피고인에게 설혹 동행자가 구조를 요하게 되었다 하여도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의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으니 밑도 끝도 없이 일정거리를 동행한 사실만으로 유기죄의 주체로 인정한 원판결은 본죄의 보호책임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하여 전씨의 행위를 무죄로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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