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이라는 한자는 ‘물 수(水)’와 ‘갈 거(去)’가 합쳐져서 나온 말이다. ‘물(水)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규칙이 있다’는 뜻이 합해진 회의문자가 바로 ‘법’이다. 또, 법이라는 글자를 구성하는 水에는 ‘공평·공정하다’는 뜻이 담겨있고, 去에는 ‘바르지 못한 것을 제거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결국 법이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순리에 맞아야 하며, 법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공평하고 바르게 조사하여 그릇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의 법은 그 글자 자체가 갖고 있는 원래의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만, 또 요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옛 속담만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법’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속담의 대부분은 법에 대해 부정적이다. 법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벼슬아치가 덮어놓고 볼기를 치며 위세를 부린다는 뜻으로, 실력이 없는 자가 덮어놓고 우격다짐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를 때 쓰는 ‘법 모르는 관리가 볼기로 위세 부린다’가 그렇고, 법을 잘 지켜야 할 법률 기관에서 법을 다루면서도 도리어 법을 모르고 어기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법 밑에 법 모른다’가 그렇다. 또, 가장 자주 쓰는 속담인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나 법대로 가는 것 같다가도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북한속담인 ‘법 돌아가다가 외돌아 가는 세상’이라는 말 역시 법에 대해 부정적이다.

법이 사용된 속담 가운데 그나마 긍정적인 게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이 역시 근자에 들어서는 능력은 없이 사람만 좋은 경우를 비아냥대는 것으로 쓰이거나 아예 ‘법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전도시켜 쓰기도 하니, 실로 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끝이 없는 듯하다.

이처럼 일반이 법에 대해 부정적인 데에는 법이라는 글자와 실제 제정되어 집행되고 있는 법 사이의 거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실제 집행되는 법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당하는’ 사람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설령 당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당하고 말 것이라는 잠재적인 피해의식이 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파급시키는 것으로 판단된다.

법이 이처럼 ‘신뢰’를 잃게 된 데에는 법의 제정이나 집행과정에서 곧잘 공평성·현실성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특히, 현실성의 결여는 해당 법 제정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법 제정으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결과만 낳기도 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탄생과 변천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2003년 7월부터 시행됐으니 이제 겨우 5년이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탄생 직후부터 크고 작은 저항에 부딪쳐야 했다. 문제는 이런 저항이 새로운 법률에 적응하기까지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 차원이 아니라는데 있다. 즉, 법 제정의 효과 자체에 대해 의심하는 차원에까지 이르고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제정 준비단계까지만 하더라도 재건축을 활성화한다는 측면이 강했다. 이 법 제정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건축은 「주택건설촉진법」과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몇몇 법에 흩어져 규정되어 있었다. 더구나 재개발사업과 유사한 상태로 추진됨에도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필요 이상의 규제를 감내해야 하는 처지였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이처럼 개별법에 흩어져 있는 정비사업 규정을 통합법으로 일원화함으로써 도시재생을 효율적으로 도모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제정되었다.

하지만, 막상 법 제정은 당초의 그림과는 달리 ‘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들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이를 제어할 수단으로 새로 탄생하는 법을 활용한 셈이다. 결국 사생아처럼 탄생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제정 초기부터 재건축 사업장을 중심으로 개정요구가 빗발쳤고, 그러한 요구는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법 개정이 이루어졌음에도, 또 최근 국토해양부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몇몇 조항들과, 불필요한 단계에 대한 생략 등 비교적 전향적인 내용의 입법예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재건축이나 재개발과 같은 정비사업도 엄연한 사업이다. 그리고 모든 사업은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독지가에 의한 자선사업이 아닌 바에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영위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재건축이나 재개발은 공익성향이 강한 사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익만 강조하고 사익은 배제한다면 제대로 사업이 진행될 수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지 어느 일방의 이익만 강요해서는 그 일방의 이익조차 거두지 못할 것이라 본다.

이번에 입법예고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은 지금까지의 개정에 비해 보다 전폭적이고 전향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성은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맹이 빠진 완화’니 ‘기대에 못 미친 규제완화’니 하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재개발 재건축 규제의 상징처럼 존재하고 있는 용적률과 층수 제한, 임대주택 의무비율(주거이전비 중복부여), 소형평형 의무비율 등은 여전히 건재하다. 사업장마다 겪고 있는 초기자금의 확보방안 역시 변화가 없다. 결국 이번 입법예고대로 개정이 된다면 절차는 어느정도 간소화되었지만,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여 현실성은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정책당국의 시각에서 보면 재건축·재개발지역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투기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갖가지 의견이 접수될 것이다. 그 의견이 정책당국에 얼마나 반영이 될지, 아니면 이전까지처럼 형식에 그칠지 궁금하다. 정책당국은 재개발 재건축사업은 우리사회의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실질적인 법 제도 혁신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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