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시 시행자인 조합과 인허가권자인 관청은 종종 대립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대게는 조합이 사업성 추구를 목적으로 정해진 규정을 초과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관으로선 정해진 범위 이상을 허가할 수 없는 입장이니 갈등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무리한 사업성 추구를 자제한다면 갈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사업추진은 원만해질 것입니다”

성북구청 건축과를 책임지고 있는 백종년 과장은 정비사업에서 발생하는 민관 대립과 관련해 조합에 쓴소리를 나타냈다. 1983년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건축과와 주택과 등 정비사업 분야에서만 몸을 담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시에서 성북구로 일터를 옮기게 된 그는 25년동안 정비사업 업무를 담당해오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이란 정비사업의 역사와 함께 해온 그에게 있어 정비사업을 조율하는 업무란 어찌 보면 자식을 키우는 것과도 같다. 그런 그이기에 절제된 사업 방침을 바라는 마음은 자식이 잘 성장하도록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조합에 질책하는 의견을 가진다고 해서 문제의 책임이 조합에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있기에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정비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관청 또한 적극적인 행정서비스를 펼쳐야한다는 입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그의 장점이다.

수 년전 양천구에서 근무할 때다. 1000세대에 달하는 한 지역주택사업이 약 8년 동안 사업이 중단된 현장이 있었다고 한다. 아파트를 다지었지만 준공인가를 받지 못해 아무런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집행부 대부분이 비리에 연루돼 해임되고 조합원만 있고 조합은 없는 유명무실의 상태로 8년이란 긴 시간을 보낸 것이다.

준공인가가 나지 않은 까닭은 부지내 국·공유지 매입절차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사업주체인 조합이 와해된 상황에서 해당 업무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단다. 결국 구청에서 나서서 아파트 몇 채를 일반분양해서 예의 비용을 마련해 국·공유지 문제를 해결하고 종래엔 입주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처리했다고 전했다.

국·공유지 문제도 그렇지만 사업주체인 조합이 비리로 인해 자멸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목격한 그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그런 만큼 조합의 비리 부분에 대해 엄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 백 과장은 “정비사업의 시행자는 원칙적으로 관이 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SH공사 등 외부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기업이 필요하다”며 공공의 역할에 대해 무게를 뒀다.

이어 “사업시행 자체는 전문가인 공기업에게 맡기고, 주민들은 주민대표회의 구성을 통해 관리·감독 역할을 수행한다면 이상적인 사업 구도가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백 과장은 재정비 절차가 진행 중인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대해서도 나름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현재 서울시립대에서 용역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단독주택 재건축의 경우 구역지정 요건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시는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의 경우 노후도 만으로 구역지정요건을 가늠하기 때문에 시간만 지나면 정비사업 대상지가 된다는 것. 이럴 경우 서울시 전 지역이 재건축이 된다고 봐다 무방하다는 것이고, 양호한 단독주택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제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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