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가 큰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나날입니다. 가을은 산책이나 바깥 활동하기에도, 책읽기에도 참 좋은 계절이죠. 수확이 이루지는 모습에 나 자신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도 많아집니다.

그분은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분이 가르친 사랑은 반드시 용서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은 용서를 함으로써 비로소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용서의 속성은 포기입니다. 포기하지 않으면서 용서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역시 거짓입니다. 포기하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으니 사랑이 완성될 수 없습니다.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요? 욕심, 욕망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요구합니다. "빌면 용서를 해 주겠다." "잘못을 인정만 하면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그분은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려면 내가 바라는 뭔가를 포기해야 하고, 그것을 포기해야만 용서가 가능해진다는 단순한 진리인 것이지요. 욕심을 버려야 용서가 가능해 지며, 용서해야 사랑이 완성됩니다.

사람이 그냥 무심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늘 우리 몸에는 기(氣)가 소리 없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임맥, 단전, 회음을 지나 독맥, 백회를 따라 끊임없이 회전하며 운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기(氣)의 운행통로에 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면, 제일먼저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치 체한 것처럼 음식물을 소화하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보입니다. 가슴 한쪽이, 또는 전부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도 받게 됩니다. 간이 나빠지면 화를 잘 내게 됩니다. 화를 자주 내면 간은 더 나빠지게 되어있고, 기(氣)의 통로에 장애가 생겼으니 다른 장기에도 나쁜 영향을 주기 시작하게 됩니다. 점점 심화되면, 사기(邪氣)가 침범하여 병이 들어 결국 천수를 다 하지 못하고 죽게 되기도 하지요. 용서를 거창하게 "하느님의 사랑" 운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용서하는 것이 나와 상대방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 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점점 더 악화되고, 점점 더 나빠져 결국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죽게 되거나 한을 품은 채 떠돌다가 다음 생에서도 그런 짓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처지를 한탄하지 말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욕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수준도 함부로 가늠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수준 이상의 것을 분별한다는 것은 진정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분이 가르쳐준 것은 사랑이 먼저가 아니라 "용서"인 것입니다. 용서야말로 모든 것의 핵심 열쇠입니다. 용서는 포기를 함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포기는 나 자신이 옳다는 아집을 버려야 하고, 용서를 받으려는 욕심과 상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망도 모두 버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용서를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사랑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주거환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