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인 박씨는 A아파트재건축조합의 조합원인 부인의 남편으로서, 평소 조합사무실에 자주 놀러가서 여직원에게 커피를 얻어 마시고, 조합장과도 알고 지내는 관계에 있었다.

박씨는 조합사무실로 놀러갔는데 마침 조합장이 외출중이고 여직원만 있자 조합장과 할 얘기가 있으니 조합장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조합장실에 들어갔다.

박씨는 조합장실에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이용하던 중 호기심에 음란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국제폰팅 전화번호가 있는 것을 보고 전화를 걸어 조합장이 올 때까지 장시간 사용하였다.

이후에도 국제폰팅에 재미를 붙인 박씨는 조합장이 없을 때마다 조합장실로 가서 상습적으로 국제폰팅을 이용하여 다음 달 조합사무실에는 백만원이 넘는 전화요금이 나오도록 하였다. 무단으로 다른 사람의 전화를 사용한 박씨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울 수 있는지 검토해 보자.


먼저 형법상 절도죄란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위 사건에서 박씨와 같이 허락 없이 남의 전화를 사용하여 많은 전화요금이 나오게 하는 행위가 타인 재물의 절취라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절도죄에서 재물은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체인 유체물 뿐만 아니라 관리가능한 것이면 에너지와 같은 동력도 포함한다. 따라서 관리할 수 있는 전기나 가스, 압력, 수력도 재물이 되지만, 동력이 아닌 정보는 재물이 될 수 없다. 판례도 전기를 전신주에서 몰래 끌어 쓴 경우 절도죄를 인정했으나, 회사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이 작성한 회사의 문서를 복사기를 이용하여 복사를 한 후 원본은 제자리에 갖다 놓고 그 사본만 가져간 경우, 그 회사 소유의 문서의 사본을 절취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여 정보는 절도죄가 성립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위 사안에서 박씨가 허락 없이 조합사무실 전화로 국제폰팅을 하였는바, 이는 무형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재물을 취득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절도죄는 재물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이므로 전화사용은 절도죄가 될 수 없다.

대법원 또한 “타인의 전화기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전화통화를 하는 행위는 전기통신사업자가 그가 갖추고 있는 통신선로, 전화교환기 등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하고 전기의 성질을 과학적으로 응용한 기술을 사용하여 전화가입자에게 음향의 송수신이 가능하도록 하여 줌으로써 상대방과의 통신을 매개하여 주는 역무, 즉 전기통신사업자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 전화기의 음향송수신 기능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이러한 내용의 역무는 무형적인 이익에 불과하고 물리적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재물이 아니라고 할 것이므로 절도죄의 객체가 되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해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한편 위 박씨의 무단전화 사용시에 전화기에 통하는 전류가 사용되었으므로 이러한 전류에 대한 절도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가 문제될 수 있으나 전화통신에서 음성전달 및 이에 부수한 각종 신호의 교환은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기는 하나 이러한 전류가 이용자의 직접사용이 가능한 객체로 제공된 것이 아니므로 전화가입자인 피해자(여기서는 조합)가 소유자라거나 점유자라고 할 수 없으므로 절도죄가 될 수 없다.

이밖에 박씨에게 형법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을지를 검토해보면, 사기죄는 기망행위와 이에 기한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타인의 일반전화를 무단으로 이용하여 전화통화 하는 행위를 KT에 대한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곤란하고, 전화통화는 일반전화가입자와 KT사이에 체결된 서비스 이용계약에 따라 제공되는 것일 뿐 KT가 착오에 빠져 처분행위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불량주화 등을 이용하여 공중전화나 자판기 등을 이용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상 편의시설 부정이용죄의 성립여부를 검토해보면 위 조합의 일반전화가 공중전화라고 할 수 없으므로 본죄도 성립할 수 없다. 결국 위와 같이 박씨를 형사상 처벌하기는 곤란하다고 할 것이나, 조합은 박씨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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