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증산2재정비촉진구역에서 치러진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선정을 위한 주민총회를 다녀왔다. 시공사가 아닌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들이 몸소 총회장에 참석해 정비사업에 대한 짙은 관심과 높은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회의가 진행되고 업체선정을 위한 투표가 시작됐다. 이윽고 주최측은 총회 참석 인원 및 투표인원 확인을 위해 총회장 출입을 제한했다. 이 때 총회장에 늦게 도착한 한 주민이 조합원(편의상 ‘조합원’이라 칭한다)이라며 총회장 출입을 허가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조합원은 주민등록증을 준비하지 못해 조합원 신분을 증명할 수 없었다.

이에 주최측은 조합원임을 입증하기 위해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고, 이 조합원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신분증을 가져왔지만 입장할 수 없었다. 그 때는 이미 투표가 시작됐기 때문에 투표용지 교부를 포함해 더 이상의 출입을 허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조합원은 당연하게도(?) 화를 냈다. 이유인즉슨 “내가 조합원인데 왜 총회에 참석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과연 이 조합원의 주장이 정당한 것인가?

본 기자는 이 조합원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밝힌다. 왜냐하면 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은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지켰을 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합원은 서면결의를 통해서도, 대리인을 통해서든 아니면 예정된 총회 시각에 직접 참석해 투표함으로서 충분히 조합원으로서 자신이 선호하는 업체를 선정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조합원은 조합원으로서의 지켜야할 최소한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이처럼 총회장에서의 출입 여부를 두고 조합원 여부를 따지는 시시비비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좀더 범위를 확대한다면 ‘내가 여기 조합원인데 무슨 소리냐’는 식의 불만과 억지 주장은 비일비재하다.

민법 제2조제1항에 따르면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쫓아 성실히 하여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리자와 의무자는 사회 공동생활의 일원으로 서로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행동해야한다는 뜻이다. 법학에서는 이를 신의 성실의 원칙이라 한다. 만일 법률 행위가 이 원칙에 위배될 때에는 정당한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효인 법률행위가 된다.

또 민법 제2조제2항에 따르면 “외형상으로 권리의 행사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권리행사가 사회질서에 위반한 경우에는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인정할 수 없으며, 이런 권리 행사는 권리의 남용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권리와 의무는 따로 떼어내서 주장할 수 없으며, 정당한 권리 행사와 성실한 의무 이행은 함께 이뤄져야 비로소 온전한 관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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