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막가파식' 사업 중단 … 지방 정비사업 붕괴 부채질

 

지방 정비사업이 경기침체와 미분양 폭탄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가운데 최대 협력사인 시공사마저 등을 돌림에 따라 붕괴 위기에 처해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조합이 계약해지를 위한 총회를 개최한다해도 개의치 않는 듯 요지부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저 몸부림으로 끝날 것이라 예측이라도 한 것일까? 계약해지 및 시공사 변경을 위한 관련 절차를 가져도 참여하는 건설사가 없어 조합의 발악은 무위로 그치는 실정이다.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는 󰡐신의성실 계약이행󰡑을 약속했던 그들이 이제는 운영비마저 끊는 등 조합을 아사시키고 있다.



지방 정비사업조합 '사면초가'


얼마 전 부산의 A재개발조합장이 본지에 전화를 걸어 통사정을 해왔다. 작년 11월부터 시공사가 7개월째 조합 운영비를 포함한 자금지원 일체를 차단함에 따라 조합이 해체될 위기라는 것이다. 조합설립을 득하고 이제 사업시행인가 절차를 진행할 차례인데 시공사가 전혀 사업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이미 수 차례에 걸쳐 계약이행을 위한 촉구 공문을 타전했지만 시공사는 묵묵부답 일체의 입장 표명이 없다고 한다.


A조합 박 아무개 조합장은 "시공권을 확보한 시공사의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처사로 인해 조합운영과 사업추진이 전면 중단된 상태이며, 사업지연으로 인해 조합원들의 재정부담 과중과 노후주택 관리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A조합의 시공사인 K사는 현재 부산 일대에서 십여곳의 사업장을 진행하지만 상황은 A조합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춘천의 B조합은 철거와 이주를 모두 마치고 나대지로 놔둔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조합에 따르면 춘천 일대는 이미 미분양 아파트가 1000세대 가량 있어 시공사인 H사가 분양이 어렵다며 공사일정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조합원이 모두 이주한 B조합은 현재 막대한 비용을 금융비용으로 납부해야한다. 당장이야 시공사에서 대납하고 있지만 결국엔 조합원이 부담해야한다. 일방적인 시공사의 공사지연으로 인해 조합원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B조합 관계자는 "막말로 배째라 식이다"며 치를 떨기도.


건설사들이 분양시장 악화 등을 빌미로 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은 비단 지방 사업장만이 아니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각지에서도 이미 공사중단이란 비상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 본지에서 알린 바와 같이 수원 권선주공을 비롯해 부천 약대주공 등 소위 내로라 하는 건설사가 시공을 맡은 현장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추가부담금을 요구하며 공사를 전면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건설사 제어수단 '무용지물'


일반적으로 사업지연이 장기화될 경우 조합의 재정적 부담은 증가하기 마련이다. 여전히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중이고 건설원자재 가격도 마찬가지다. 늦어진 만큼 증가된 사업비가 오롯이 조합원이 부담해야한다. 사업지연은 단순한 부담금 증가뿐만 아니라 조합 내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사업지연의 책임을 집행부의 무능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이른바 비대위의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조합과 시공사가 반목을 거듭하다 갈라설 경우에는 결국은 소송으로 끝을 맺곤 한다. 이 때 사업지연 등으로 발생된 비용을 누가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주된 쟁점 중 하나. 부산의 A조합의 경우 사업진행을 위한 최소비용이라 할 수 있는 조합운영비마저 차단했는데, 운영비는 시공사 선정 당시 제시한 사업제안서에 포함돼있는 내용이다. 제안서는 추후 체결하는 계약서의 일부가 된다.


즉 운영비 차단의 귀책사유를 따진다면 건설사측의 책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전문 변호사 의견을 구한 결과 󰡐시공사의 귀책사유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소송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것이 대개의 의견이었다. 그 까닭은 차입한 사업비의 상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시공사 선정이 이뤄지면 추진위를 거쳐 조합에 이르기까지 조합이 여러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등 여러 협력업체로부터 차입한 비용 또는 용역비를 지급하는데, 이를 시공사로부터 차입해 되갚는 형태다. 조합은 시공사 선정에 앞서 상환해야할 사업비를 예상하고 이를 입찰보증금의 형태로 차입하는 것이다.


문제는 선정 이후 맺은 가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선 빌린 돈을 갚아야하는데, 이를 구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조합원이 십시일반 모아서 갚은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협력업체로부터 손을 빌려야하는데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결국 해당 사업에 참여할 다른 건설사를 물색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건설사들 또한 그들 사업장에서 사업을 중단시키는 마당에 원래 건설사랑 척을 지면서 이 사업에 참여할 것인가? 여러 현장에서 시공사 계약해지 절차를 진행하지만 막상 입찰을 진행하면 참여하는 건설사가 없다는 것이 이 같은 건설사간 묵계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조합으로선 건설사를 제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자르고 싶어도 자를 수 없는, 사업을 하고 싶어도 진행할 수 없는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위기다.



다잡은 고기엔 밑밥을 주지 않는다?


요새 건설사들이 힘들다고 한다. 금융위기에 이은 물가상승, 게다가 분양시장까지 바닥을 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건설사들이 지방에 마련한 지사들을 속속 철수시키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지방 정비사업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인가.


조합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공사를 선정할 당시에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것처럼 신의성실을 약속했다가 지금은 어렵다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이중성 탓이다. 소위 대형 건설사라 해서 다른 것도 아니다.


"조합의 최대 협력사로서 운영비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A조합 박 조합장은 "건설사들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언질도 대책도 없이 시간만 보내며 조합을 압박하는 것은 이미 정도를 넘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편 최근 재정비촉진지구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시공사 선정 절차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수주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억원에 달하는 홍보비가 소요되기 마련인데, 지방에서 1천만원 가량의 운영비조차 대여해주기 어렵다며 쩔쩔매는 모습과는 가히 하늘과 땅 차이다. 다잡은 고기엔 밑밥을 주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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