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운, 임대단지 토지분할 ‘조건부 조합설립인가’로 활로 모색
수년간 답보상태에 머물렀던 남산타운 리모델링이 임대주택 분할이라는 대안으로 탈출구를 마련하는 모양새다. 이를 계기로 남산타운처럼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혼합된 주택단지의 노후화를 대비하여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 재정비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남산타운 리모델링, 물꼬 트나?
지난 2월 5일 서울 중구청은 남산타운 리모델링 관련 주민설명회를 열어 그간의 사업추진 과정과 향후 계획을 주민들과 공유했다. 서울 최대 규모 리모델링 단지로 손꼽히는 남산타운은 2002년 준공된 5150세대 대단지로, 분양주택 3116세대와 임대주택 2034세대가 한 필지를 구성하고 있다.
입지 특성상 남산자락의 중점경관관리구역에 해당되며 기존 용적률이 231%에 달해 현실적으로 재건축 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곳이다. 그러던 2018년 ‘서울형 리모델링 시범단지’로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혼합된 단지 특성상 조합설립인가를 획득하지 못해 수년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다. 현행 법령상 조합설립을 통과하기 위해선 단지 전체 구분소유자 2/3 이상과 동별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구분소유권의 약 40%에 달하는 임대단지 소유권을 쥔 서울시의 반대로 분양주택만을 대상으로 동의서를 징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구청은 동의요건 미충족으로 총 6차례에 걸친 남산타운의 조합설립 신청을 반려하게 됐다. 남산타운 리모델링추진위원회는 ‘서울시가 리모델링 시범단지 선정시 분양주택만으로 대상으로 했기에 그에 따른 행정행위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임대세입자 입장에서는 자산가치 상승이란 프리미엄도 없고, 타지로 이주해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다. 서울시도 세입자를 강제로 이주시킬 경우 대규모 이주 물량과 적정 이주 시기를 맞춰야 하는 부담 때문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던 지난 2월 5일 중구청이 서울시에 ‘조건부 조합설립인가’ 방안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서울시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남산타운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중구가 제시한 조건부 조합설립인가는 단일 필지로 구성된 남산타운에서 임대단지를 제외하고 분양단지만 조합설립인가를 추진하는 방안이다.
임대단지 소유자인 서울시에는 권리변동이 없도록 할 것이며, 노후한 임대단지 외관도 정비하는 방안을 곁들기도 했다. 이와 관련 중구는 조건부 조합인가에 대한 법률자문을 구하는 한편 혼합주택단지에 대한 특례조항 신설을 정부에 요구할 방침으로 밝혔다.
∥혼합단지 재정비, 법적 공백으로 ‘교착상태’
지난 해 11월 서울시의회 이민석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서울시내 SH공사가 공급 및 관리하는 노후 공공임대단지는 34개소 4만6056세대(임대 3만9802세대)로, 이 중 수서1, 신내9, 성산 등 22개 단지가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이 혼재된 혼합단지에 속한다.
이민석 의원은 “혼합단지의 노후화로 재정비 필요성이 커지고, 분양주택 소유주들의 재건축 요구도 늘고 있지만 법적 공백으로 사업추진이 어려운 사태”라고 밝혔다. 현행 「장기공공임대주택법」은 사업주체가 ‘단지 전체를 소유한 경우’에만 재정비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분양 세대나 개인 소유 상가가 단 한 곳이라도 있으면 SH공사는 사업을 주도할 수 없다는 것.
‘도시정비법’을 적용해 민간이 주도하는 재건축을 추진하려 해도 기존 임대주택 세입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없어 공공기관인 SH공사가 동의하기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이민석 의원은 “혼합단지의 노후화는 입주민의 안전과 직결된 시급한 민생 현안”이라며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사업이 무기한 지연되어서는 안 되며, SH공사가 정부와 협력해 법적, 제도적 공백을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택법 개정안 발의됐지만 ‘기약 없는 표류’
남산타운 리모델링 등 노후화된 혼합단지 재정비 문제가 이슈화됨에 따라 지난 해 5월 박성준 국회의원이 주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기도 했다. 해당 개정안은 임대주택을 제외한 공동주택과 공용부분을 리모델링하려는 경우 리모델링하려는 공동주택의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의 확보만으로 조합설립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여러 반론에 막혀 아직도 국회에 표류 중이다. 당시 국토교통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노후된 혼합주택단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임대주택 소유자의 재산권과 임대주택 입주민의 주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고, 공용시설은 입주민이 공동 소유 및 공동 사용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시는 임대주택 소유자의 재산권과 입주민의 부대·복리시설 이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공용부분의 변경이 다른 구분소유자의 권리에 특별한 영향을 미칠 때 그 구분소유자의 승낙을 받도록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결의 요건에 ①임대주택이 분양주택과 별동의 건축물이고 ②임대주택 소유자의 권리변동이 없으면서 ③임대주택 소유자가 입주자 공유인 부대·복리시설 이용에 지장이 없다고 인정할 것을 조건으로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공용부분 리모델링 추진 시 공사비 부담비율에 관한 협의가 필요하고, 공용부분이 분양주택 위주로 리모델링될 경우 임대주택 입주민의 이용 편의가 저해될 수 있으며, 향후 관리비·유지비 부담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리모델링 계획 및 비용부담에 관한 임대주택 소유자의 동의 절차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소셜믹스 강화 추세, 혼합단지 재정비의 향방은?
혼합단지 재정비 관련 박성준 의원의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박성준 의원의 개정안을 살펴보면 이는 분양단지와 임대단지가 물리적으로 분리된 경우에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임대주택은 소셜믹스 정책이 강하게 적용돼 분양동에 점처럼 배치되는 등 사실상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구분하기 어려워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서울시의회 최재란 의원은 “서울시는 혼합주택 확대는 물론 기존 동 분리, 라인 분리를 벗어나 완전한 소셜믹스를 추구하고 있다. 혼합주택단지에 대한 리모델링,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혼합단지 리모델링은 더 어려워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이어 “남산타운아파트 사례는 10~20년 후에 서울시 곳곳에서 발생할 일을 미리 겪는 것인데, 예방접종이라 생각하고 대응책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며 제도적 뒷받침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