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이어 재개발까지 번진 서울시 ‘무리수’

재건축사업에 이어 재개발사업에까지 전해진 서울시의 ‘보존’ 의지에 많은 정비사업 현장에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울 미래유산사업’을 정비사업 구역에도 적용하려는 것인데, 현장에서는 “무의미한 흔적남기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 서울 미래유산사업은?

서울시는 지난 2012년 미래유산 보존 및 활용 사업의 추진체계를 마련한 이후 다음해인 2013년부터 서울 미래유산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 근현대 유산 중 미래세대에게 전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선정해 시민들과 그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 그 취지로, 이와 관련해 시는 “각종 개발 등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라 서울 시민의 삶을 담고 있는 근‧현대 유산이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멸실‧훼손되는 상황에 따른 조치”라고 말한다.

마포구 석유비축기지가 공원으로 재탄생하면서도 석유 저장탱크를 그대로 보존한 것이나 성동구 삼표레미콘 부지 설계공모전에서 시멘트 저장고를 공기정화탑으로 활용한 작품이 선정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 울며 겨자 먹기로 이미 시작된 재건축 흔적남기기

“미래유산은 기억과 감성이 담긴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시민이 스스로 발굴하고,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보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법령에 의거해 보존이 의무화된 문화재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유산사업과 관련된 서울시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미 몇몇 재건축사업에 적용된 미래유산사업은 이와 같은 설명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는 “아파트의 흔적과 시민들의 생활ㆍ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보존돼야 한다”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드려 한 동을 존치해 문화시설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일부 동의 존치를 계획하고 있는 개포동과 반포동의 재건축 단지 사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다. 대부분의 재건축단지들이 사업진행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상황으로, 문화유산을 ‘스스로’ 발굴해 ‘자발적’으로 보전한다는 사업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시가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하면서 ‘흔적을 남겨야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과연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한 재건축 조합원은 “그나마 문화재라면 남기는 것이 이해가 가지만, 다 쓰러져가는 옛날 건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 한남3구역, 교회건물 존치 소식에 ‘난감’

지난달 초 “서울시가 서울 미래유산사업에 따른 ‘흔적남기기’를 재건축사업 뿐만 아니라 재개발사업으로도 확대하려 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서울시는 즉각 설명자료를 통해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구역을 대상으로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사업 추진의 시급성, 구역 내 자원 분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20개소를 우선 심층조사하고, 그 외 구역은 단계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라며 “조사된 지역 고유의 역사와 장소성, 생활상, 주민의 기억 등을 전문가 자문, 자치구 및 사업시행자 협의 등을 거쳐 역사·생활문화유산 보전 및 활용방안을 마련할 계획으로, 용적률 인센티브, 조성비용 지원 등 행정적 지원을 통해 사업추진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유도(권장)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가 설명자료를 통해 밝힌 조사대상은 조합설립인가부터 사업시행인가 단계까지의 정비구역 101개소다.

위 설명자료만을 보면 흔적남기기의 확대는 아직 ‘조사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재개발사업으로의 흔적남기기 확대는 벌써부터 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남3구역이 그 대표주자인데, 서울시가 지역 주민들의 의견과는 달리 구역 내 한광교회를 용도변경해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개발 방향을 잡아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2016년 9월 공고된 한남지구 재정비 촉진계획 변경지침(안)이 나오자 한광교회측은 “불가피하게 교회를 이전하게 될 경우 건축물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 “외관상 누가 봐도 교회건물이라고 느낄 수 있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문화공연장 등 다른 목적으로 건물을 사용할 경우 교인들로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로, 이태원 및 이슬람사원 등이 가까운 지역의 특성까지 감안한 요청이었다.

이에 용산구청측은 “입지적 특성을 고려해 교회를 이전하고 교회 건물 철거 후 문화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3월에도 ‘교회 건물 철거’ 입장을 유지하며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 심의 시 충분히 검토되도록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의 입장은 이와는 달랐다. “지난해 6월 재정비위원회 이후 줄곧 ‘교회건물 존치’를 고수해 왔다”는 것.

이와 관련해 한광교회 차은일 담임목사는 “서울시는 줄곧 같은 입장을 고수해 왔다고 하지만, 서울시가 한남3구역과 관련된 지난해 5월 보도자료와 6월 구청공람, 10월 결정고시 보도자료 상 조감도에 교회건물을 대치하는 조형물을 그려 넣거나 의도적으로 교회건물을 지워 마치 철거가 결정된 것처럼 속임에 따라 모든 조합원들과 한광교회는 ‘기존 교회건물을 철거하고 내려가는 것’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남3구역 조합원 카페에서 의견을 나누고 각계의 지역 관계자들과 면담을 진행한 결과 조합측은 물론 국회의원, 구의원 및 시의원, 구청장 등 모든 지역 관계자들도 교회건물 철거에 동의하고 있는데 오로지 서울시만 유독 교회건물을 존치해 다른 시설로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또한 차은일 담임목사는 “당초 교회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존치해달라는 입장이었지만 공익성을 갖고 있는 재개발사업의 특성을 감안해 이전에 동의하고, 그저 철거만을 요청했지만 시가 수많은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이조차도 받아드리지 않고 있다”며 “현재 교단 등을 통해 시장면담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혹시라도 교민 및 주민들의 의견이 받아드려지지 않을 경우 결사항전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한남3구역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흔적남기기’로 인해 분쟁의 씨앗을 안게 된 셈이다.

 

∥ 다른 방식의 ‘의미 있는’ 흔적남기기 돼야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 진행사항 등을 살펴보다 보면, 시가 골목길 본래 모습을 ‘보존’한 채 마을에 커뮤니티 공간 등을 새롭게 조성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소방도로 조차 확보되지 않은 골목길까지 기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화재 등으로 인한 주민들의 안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시가 언급한 조사대상 재개발조합 역시 이와 같은 ‘흔적남기기’에 부정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성수1지구 황상현 조합장은 “우리 구역의 경우 특별하게 흔적을 남겨야 할 만한 시설이 전무하다고 생각된다. 초가집이나 기와집도 아니고, 남긴다면 겨우 단독주택 건물이나 오래된 양복집 하나 정도를 남긴다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하며 “이는 대부분의 재개발 현장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또한 노량진6구역 이호영 조합장은 “지역 여건에 따라 역사․문화적인 가치가 있는 시설이 존재하는 재개발구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시설이 있는 구역이라고 할지라도 흔적남기기를 위해서는 애초에 사업초기부터 관련 내용을 담은 계획을 세워 사업을 추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미 사업계획을 세워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된 상황에서 흔적남기기를 끼워 넣는 것은 사업을 진행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전 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투쟁을 해서라도 막아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많은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에서 진행과정에서 이뤄지는 미래유산사업이 의미 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흔적남기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거환경연합 김구철 조합경영지원단장은 “역사․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과거의 생활상을 보존한다는 개념자체는 좋은 발상이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서울시가 강제하고 있는 흔적남기기의 대상이 정말로 현대 주거문화에 대한 대표성을 갖고 있는 것인지, 혹은 문화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을 감출 수 없다”며 “정비사업 과정상의 흔적남기기가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일부 동이나 건물 등을 정비사업 구역 내에 존치할 경우 향후 새로운 단지가 조성된 후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생활상을 기록하는 의미 있는 흔적남기기가 되기 위해선 다른 공간에 주택역사관 또는 주택박물관을 조성해 해당 시설을 그대로 옮겨놓거나 재현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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