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믿고 싶은 것만 믿다가 ‘위기 자초’

사상 초유의 공사중단 사태가 발생했던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 둔촌주공이 6개월만에 정상궤도에 올라섰다.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더 올리겠다고, 공사비를 조금이라도 덜 내겠다고, 조합원 6천여명이 뭉치면 시공사도 이길 수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조합원당 1억8천만원에 달하는 추가 부담금과 입주가 1년 6개월이나 늦어질 것이란 충격적인 전망이었다. 제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았던 집행부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었던 조합원이 빚어낸 참사가 아닐까.

지난 15일 총회 안건에는 국토부 실태조사 결과 예산의 수립 없이 대의원회에서 업체선정 및 계약 체결한 사안에 대해 수사의뢰 사항으로 지적됨에 따라 관련 계약을 해지하는 안건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 정상화위원회에 의해 전임 집행부가 개최한 지난 4월 총회 당시 추인한 계약 14건의 도시정비법 위반 사항을 서울시 등 실태조사팀에게 제보 및 강동경찰서에 고발됐던 것으로 나타난다.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업체 선정 업무를 총회 결의가 아닌 대의원회에서 진행했다는 점에서 전임 집행부에 대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보인다. 이 같은 조짐은 사실 올해 초부터 제기됐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둔촌주공 조합원 및 공사참여 협력업체 관계자 등 20여명이 이권개입 의혹으로 전임 집행부 및 자문위원 7인을 대상으로 동부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당시 고발장에 따르면 전임 집행부가 아파트 고급화를 명분으로 특정 공사업자(정비기반시설, 가구·타일 등 마감재, 층간차음제, 홈네트워크시스템 등)의 변경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총회 의결 등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계약을 체결한 공사업자를 합리적인 사유 없이 막무가내로 자신들이 추천한 업체로 변경하려는 전임 집행부의 모습에서 이권개입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던 것.

당시 둔촌주공은 조합원 동·호수 추첨과 분양계약 체결, 일반분양 등 조합원 분담금과 직결되는 중대한 업무들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전임 집행부는 업체변경에만 집중했기에 이권개입에 대한 의혹이 짙어졌던 것. 결국 이들은 전원 사임했지만 그 피해는 모든 조합원이 공동으로 지게 됐다.

전임 집행부가 제시한 장밋빛 환상에 취한 일반 조합원들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전임 집행부의 행보를 저지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비판도 없이 안일한 마음으로 공사중단을 방치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점은 둔촌주공이 초래한 이번 참사가 여타 조합에게는 최고의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둔촌주공을 계기로 여타 사업장에게는 이 같은 불행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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