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내역입찰 집착에 방향성 상실? … 턴키방식, 조합원 신뢰 ‘부정적’

시공사 선정기준 관련 내역입찰에 대한 서울시의 과도한 집착이 결국 사달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서울시 도시·주거환경정비조례’가 개정됨에 따라 정비사업의 숙원이었던 시공사 선정 시기가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겨지게 됐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시공사 선정시기 조기화에 따른 안정적 사업추진을 위한다며, 시공사 선정 관련 세부기준을 마련해 개정조례 시행과 함께 고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정된 조례가 7월 1일 시행된 것과 달리 세부기준은 아직 고시되지 않아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개정조례안 심의과정에서 제시된 검토·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서울시 정비사업장 중 조합설립인가 단계는 96곳(재개발 32곳, 재건축 64곳)으로 집계됐다. 96곳 모든 사업장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상당수 조합이 서울시의 늑장 행정으로 인해 시공사 선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천금과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조례 시행 후 1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부기준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세부기준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서울시 시공사 선정 세부기준

시공사 선정시기 조기화에 대한 업계와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서울시의 입장이 들어맞음에 따라 시는 올해 초 TF를 구성해 세부방안을 논의했다. 해당 TF에는 정비업체와 설계자, 시공자, CM 등 관계 전문가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알려진 시공사 선정 세부기준은 크게 일곱 가지 사항을 반영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시공자 선정 방식으로 설계·시공 일괄발주(턴키) 방식의 신설·도입이다. 시공사 선정 방법으로 설계·시공 일괄발주(턴키) 방식을 신설·도입하되, 분리발주 또는 일괄발주 방식의 채택은 조합의 선택사항으로 했다.

두 번째는 시공자 입찰시 설계도서 중 설계도면은 기본설계도면 수준을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설계·시공 분리발주 적용시 시공자 선정 전 조합이 작성하는 설계도면 또는 일괄발주 적용시 시공자가 일괄입찰시 제안하는 설계도면 모두 기본설계도면 수준을 유지해 내역입찰이 이뤄지도록 한다.

세 번째는 시공자가 대안설계 등 설계 제안시 설계안은 정비계획 범위 내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건축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공자의 무분별한 사업제안을 제한하기 위해 대안설계의 범위는 시 심의를 통해 결정된 정비계획의 범위내로 한정하도록 하고 있다.

네 번째는 시공자 선정시 건설사업관리 자문 규정을 추가한 사항이다. 조합이 시공자 선정시 설계의 경제성 등 검토, 입찰, 계약, 시공관리 등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건설사업관리에 관한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추가했다.

다섯 번째는 시공자 입찰을 위한 현장설명회 개최시 조합의 물량내역서 제공을 의무화하는 사항이다. 설계·시공 분리발주 방식에서 입찰시 조합의 물량내역서 제공을 의무화하여 향후 설계변경 등 발생시 내역비교가 가능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이다. 이는 턴키 방식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섯 번째는 시공자 선정시 총회에서 전체 조합원 과반수 의결요건을 반영한 사항이다. 일곱 번째는 조합이 공사비 검증시 기존 한국부동산원 외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도 검증을 요청할 수 있도록 검증기관을 추가한 내용이다.

 

∥기본설계로 내역입찰, 가능할까?

상기 세부기준의 주요내용 중 논란이 예상되는 사항으로 먼저 기본설계도면을 바탕으로 내역입찰을 유도한다는 사항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설계도면을 바탕으로 물량내역서를 산출해 차후 무분별한 공사비 증액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문제는 기본설계도면을 기준으로 제대로 된 물량내역서를 산출할 수 있는지 여부다.

통상 기본설계도면이라 하면 건물 구조와 설비, 계획 등 기본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다. 정비사업의 프로세스를 반영하면 정비계획 변경을 시작으로 각종 영향평가와 건축심의 등을 거쳐 설계안이 대폭 변경되기에 사실상 물량내역서 산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앞서 밝힌 개정조례안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적인 내역입찰이 가능하려면 공사원가 산출서, 설계도면, 공사시방서, 현장설명서 등의 설계도서(도면+서류)와 공종별 공사비 산출기준, 공사예정공정표, 산출내역서, 마감재 리스트(규격, 재질, 모델명 등 구체적 명기)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연 기본설계도면을 바탕으로 물량내역서 산출이 가능한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설사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임의의 물량내역서를 산출한다 해도 각종 변수가 돌출되는 정비사업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면 설계안이 변경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임의의 물량산출서 제공은 차후 공사비 변경에 대한 분쟁과 갈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턴키방식 관련 실효성 논란

한 가지 더 지적할 부분은 설계와 시공을 일괄발주하는 턴키 방식에 대한 사항이다. 이는 시공사로 하여금 설계와 시공을 모두 책임지도록 하는 것으로서, 앞서 지적한 기본설계를 바탕으로 조합이 물량내역서를 제공토록 규정한 사항을 보완하고자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정비사업의 특성과 조합원의 정서 등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안일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시공사에 부정적 견해가 상당한 조합원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턴키 방식으로 시공사 선정을 진행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전망이다. 현재 시공만 맡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사비 관련 분쟁이 속출하고 있는데, 이에 더해 설계까지 통으로 맡게 된다면 어떤 야료를 부릴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합원의 정서를 무시하고 조합이 턴키 방식으로 시공사 선정을 치른다면 해당 조합 집행부는 상당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집행부와 시공사간 유착관계에 있다며 해임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시공사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설계안이 어떻게 변경될지 예상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설계까지 덥석 책임질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말 많고 탈 많은 정비사업에서 사업계획이 크게 변경됐을 경우 뒷감당을 고려한다면 애초에 턴키 방식을 수용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와 관련 세부기준 마련을 위한 TF 과정에서 건설사측의 반대가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정비사업의 여러 특성을 고려한다면 턴키방식에 의한 시공사 선정 방식은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진퇴양난에 빠진 서울시

시공사 선정 세부기준이 아직도 고시되지 않는 까닭에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서울시가 인식하고 있어서일지 모른다. 제도개선이란 명목 아래 새로운 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 때문에 미루고 있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일천한 의견을 제시한다면 서울시가 내역입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를 제외한 여타 지자체에서는 조합설립 시점에서 총액입찰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하고 있다. 서울시가 우려하는 대로 공사비 증액으로 분쟁을 겪는 경우가 있지만 모든 사업장이 그런 것은 아니다. 또한 내역입찰로 진행한다 해서 차후 공사비 분쟁을 겪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결국 개별 사업장의 여건이나 집행부와 조합원간 신뢰도, 시공사 등 협력업체와의 상성, 관련 제도의 변화 등 각종 요인에 따라 분쟁에 휩싸일 수도 있고, 슬기롭게 해결할 수도 있다. 관건은 내역입찰을 강요하는 지나친 간섭 보다는 보다 유연한 포용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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