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00만원 → 올해 800만원 ‘껑충’ … 경쟁입찰 증발, 조합 주도권 상실 위기

천정부지로 치솟는 공사비로 인해 정비사업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건설 원자재와 인건비, 그리고 금리 인상 등으로 촉발된 공사비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700만원대에 이뤄졌던 정비사업 공사비가 올해는 800만원대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이 같은 공사비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앞으로 공사비가 얼마까지 오를지 난감한 상황이다.

지난 해부터 본격화된 공사비 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관리처분과 착공 전후의 현장은 공사비 추가 인상을 두고 공사 중단의 위기에 처해있다. 시공사 선정 단계에 놓인 사업장은 경쟁입찰은 고사하고 입찰이 성사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역대 최고 수준인 800만원대 공사비를 제시해야 그나마 수의계약이라도 가능하다.

급등한 공사비로 인해 조합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시공사 선정이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정비사업에 대한 중심추가 시공사측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조합이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공사비 분쟁 ‘현재 진행형’

지난 해부터 급증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먼저 북아현2구역은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시공권 유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조합은 올 초 공사비를 490만원에서 610만원으로 증액하기로 했다. 하지만 6월 시공사업단인 삼성물산·DL이앤씨는 조합원분양의 경우 859만원, 일반분양분은 749만원의 공사비를 밝혔다.

이후 조합은 사업단측 제안에서 20%를 하향한 수준에서 협상을 제안했지만 사업단에서 749만원을 고수함에 따라 협상이 가로막혔다. 결국 조합은 협상 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대의원회를 통해 계약해지 여부를 처리할 것으로 알려진다.

서대문구 홍제3구역의 경우 최근 대의원회를 열어 시공사인 현대건설과의 계약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2019년 사업시행인가, 2020년 현대건설을 선정한 홍제3구역은 지난 해 관리처분인가를 통과한 후 공사비 협상을 진행해왔다.

시공사 선정 당시 512만원으로 계약했지만 현대건설은 원자재 및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해왔다. 지난 해 687만원, 올해 898만원을 요구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했던 것. 조합은 다음 달 총회를 통해 공사계약 해지 여부를 다룰 계획이다.

이 같은 공사비 분쟁은 비단 서울·수도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부산의 시민공원 촉진2-1구역의 경우 지난 6월 총회를 통해 GS건설과의 시공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성남 산성구역은 지난 5월 대우·GS·SK 사업단을 해지하고 새로운 시공사를 물색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계약해지를 철회하고 기존 사업단과 재협상 중이다.

 

∥공사비 800만원 시대 진입

지난 해 시공사 선정을 치렀던 주요 정비사업 현장을 보면 3.3㎡당 공사비는 700만원대를 이루었다. 대우건설을 선정했던 한남2구역은 770만원, 삼성물산을 선정했던 종로 사직2구역도 770만원, 역시 삼성을 선택했던 흑석2구역은 765만원 등이다. 하지만 올해 양상은 800만원대를 제시하지 못하면 입찰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구 신당9구역의 경우 작년 11월 742.5만원으로 시공사 선정에 나섰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올 6월 공사비를 840만원으로 증액했지만 지난 10일 입찰마감 결과 유찰되고 말았다. 신당9구역은 재입찰공고를 내고 오는 10월 4일 입찰을 마감할 계획이다.

LH와 공공재건축을 시행 중인 광진구 중곡아파트 또한 기존 65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공사비를 증액해 시공사 선정을 진행 중이다. 1, 2차 입찰 당시 포스코이앤씨가 단독으로 참여해 총회 결의를 거쳐 수의계약 형태로 시공사 선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그밖에 여의도 진주아파트는 840만원을, 구로구 보광아파트는 806만원을 제시했다.

 

∥자취를 감춘 경쟁입찰

올해 진행되고 있는 시공사 선정 사례를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3.3㎡당 공사비가 800만원을 넘겨야 간신히 성사되고 있다. 그 또한 단독입찰에 따른 수의계약이 아니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경쟁입찰을 통해 최적의 사업제안을 받으려는 조합의 목표가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처럼 보인다.

재건축에 비해 사업성 측면에서 열세인 리모델링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수도권의 한 리모델링 조합장에 따르면 건설사 관계자가 입찰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경쟁입찰은 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대놓고 밝혔다는 것.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조합이 마련한 입찰지침을 변경해줄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는 시공사 선정 시점에서의 가계약은 일단 넘어가고 차후 실착공을 앞두고 치러지는 본계약 시점에 시공사에 유리하도록 사전포석을 마련하는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공사비 상승 여파가 조합의 주도권을 뒤흔드는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주도권 역전현상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다른 변수, 시공사 선정기준

공사비 상승 여파로 일선 정비사업장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별도로 주의할 사안이 바로 미뤄지고 있는 서울시 시공사 선정기준이다. 지난 3월 개정된 도시정비조례에 의거 지난 7월부터 공개됐어야할 시공사 선정기준이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개정 조례에 의해 서울시는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사 선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뤄지는 선정기준에 의해 많은 사업장이 시공사 선정을 보류하고 서울시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것.

일단 서울시는 시공사 선정방식으로 도입된 설계·시공 일괄발주(턴키) 방식과 내역입찰제 등 새로운 선정기준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할 부분이 시공사 선정요건으로 전체 조합원 과반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공사비 상승 여파로 경쟁입찰이 어려운 상황에서 과반수 요건으로 허들을 높이면 시공사 선정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분양가 상승, 주택공급 차질 전망

공사비 상승으로 정비사업 전체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주택공급 위축과 분양가 상승이 예상된다. 공사비 증액에 따른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시공사 선정을 비롯해 공사가 중단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당초 예정됐던 주택공급이 지연되고 위축되고 있는 것.

지난 6월말 주택도시보증공사 발표에 따르면 전국 민간아파트 분양가가 3.3㎡당 1613만 7000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7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비사업조합으로선 공사비 상승에 따른 부담금 증가 부분을 일반분양가 상승으로 만회하는 형국인 셈이다.

서울·수도권 주택공급의 상당 부분을 정비사업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활한 주택공급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조속한 대안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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