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계약서 표준안 독소조항 ‘속출’ … 재원조달 주체 등 시시비비 예상돼

서울시가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정비사업 신탁방식 관련 계약서와 시행규정 표준안을 제시했다.

신탁방식은 전통적인 정비사업 공식인 조합방식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2016년 도시정비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그간에는 별반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근래 들어 공사비 상승 등 사업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신탁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며 신탁방식을 채택한 일부 현장에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며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논란으로 계약해지에 대한 사항을 들 수 있다. 주민측과 신탁사간 계약해지를 위해서는 주민 전원 동의를 필요로 하는 등의 계약서상의 독소규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주민과 신탁사간 공정한 계약체결과 주민 권익보호를 위해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이와 관련 지난 10월 23일 국토교통부는 신탁계약서 및 시행규정 표준안을 마련해 의견을 수렴한다고 밝혔다. 이에 신탁방식의 표준계약서와 표준시행규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반응을 짚어보기로 한다.

 

∥표준 계약서·시행규정 주요사항

먼저 논란이 가장 많았던 계약해지 부분에 대해서는 신탁 계약을 체결한 주민 전체가 계약을 해지하지 않더라도 주민 3/4 이상이 찬성하거나, 신탁사가 계약 후 2년 내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지 못한 경우 신탁 계약을 일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이슈였던 신탁보수는 구체적인 내역 없이 개략적인 가이드가 제시돼 추후 논란이 있을 듯하다. 이에 따르면 신탁보수 산정액의 산출방법〔정비사업비, 분양금액, 그 밖의 토지등소유자와 사업시행자간 협의로 정한 금액 등을 기준으로 요율방식으로 산출(상한액을 정하는 경우 포함)하거나, 정액방식으로 산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 그 외 신탁보수 지급시기도 별도 기재할 것을 나타내고 있다.

주민이 신탁한 부동산, 즉 신탁재산과 신탁사 고유재산과의 구분관리도 명시했다. 표준계약서 제16조(신탁재산의 운용방법) 제1항에 따르면 수탁자(신탁회사)는 신탁재산을 다른 신탁재산 및 수탁자의 고유재산과 구분하여 관리하여야 하며, 이 경우 본건 사업시행구역 내 모든 신탁계약에 따른 신탁재산을 1건의 신탁계정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업자금 차입’ 관련 수탁자는 본건 사업의 수행과 이 신탁계약에 따른 신탁사무에 필요한 비용을 신탁재산으로 지급할 수 있다. 신탁재산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금융기관, 그 밖의 제3자 또는 수탁자의 고유계정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다. 상기 조항에 따른 차입을 위해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담보로 제공할 수 없지만 착공 이후에는 신탁재산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모호했던 사업완료 기한도 명확히 규정된다. 신탁계약기간은 수탁자에 대한 신탁부동산의 신탁등기 완료일로부터 도시정비법 제89조에 따른 청산금의 정산 등 정비사업과 관련한 업무를 완료한 때까지로 한다. 또한 수탁자는 이전고시일로부터 1년 이내에 청산금의 정산을 위한 토지등소유자 전체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다만 소송 등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전체회의 의결을 거쳐 소집을 연기할 수 있다.

 

∥“자금조달은 신탁사 몫”

이번 표준계약서 등은 관련 기준이 없어 모호했던 계약체결 및 운영관리 측면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재원조달 주체, 신탁재산으로의 비용지급 등 주민측에 불리한 사안들이 적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제이앤케이도시정비(대표=백준)가 제시한 의견서를 바탕으로 쟁점사항을 소개해본다.

먼저 표준안 제11조(사업자금의 차입)에 따르면 수탁자는 본건 사업의 수행과 이 신탁계약에 따른 신탁사무에 필요한 비용을 신탁재산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이앤케이는 수탁자(신탁회사)가 신탁재산을 통해 비용을 조달하는 것은 사업의 관리자 범위를 넘어서 사실상 소유자로서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수탁자가 필요비용을 직접 조달하는 방안이 공정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제12조(신탁재산의 관리 등)에 따르면 수탁자는 신탁재산의 보존·유지·수선 등 관리업무를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업체) 또는 제3자에게 위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신탁재산의 보존 등 관리업무는 도시정비법에 의거 정비업체의 역할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업무다. 따라서 관리업무의 위임대상에서 정비업체를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또한 제12조 제3항에 의거 수탁자 또는 신탁재산의 관리업무를 위임받은 자는 신탁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신탁재산의 일부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경우 수탁자에게 신탁재산의 점유사용권한까지 부여한 것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17조(비용 등의 부담)에 따르면 수탁자는 신탁사무 처리에 필요한 비용 등을 신탁재산에 속하는 금전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이앤케이는 ‘신탁업체의 주요한 역할이 재원조달임에도 불구하고 신탁업체들이 위탁자의 재산을 통해 금원을 마련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며 수정의견을 나타냈다.

신탁해지 관련 전체 토지등소유자 3/4이상 찬성 의결에 대해서는 조합방식에서 정관의 중대한 변경 요건인 조합원 2/3 이상 찬성요건으로 수정하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아울러 임의해지 조항이 위탁자와 수탁자 모두에게 허용돼야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표준시행규정에 대해서는 지위가 불분명한 ‘정비사업위원회’의 정의에 대해 보완을 요청했다. 관련 판례(서울행정법원 2021구합89565 판결 참조)에 따르면 정비사업위원회가 당사자 능력이 없는 임의단체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표준안은 정비사업위원회를 ‘토지등소유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업시행자와의 협의 등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구성하는 토지등소유자 대표기구’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토지등소유자전체회의의 사무집행기구로서 토지등소유자 대표기구’로 변경하자는 의견이다. 이는 지난 10월 24일 국회에 발의된 도시정비법 개정안의 ‘토지등소유자대표회의’ 개념을 도입한 사항이다.

 

∥신탁방식, 검증은 지금부터

이번에 공개된 신탁방식 계약서와 시행규정 표준안에 대한 주민측과 신탁사간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신탁사측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인 반면 주민측은 수수료율 불명시, 재원조달 주체에 대한 논란 등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인 것. 의견수렴을 거친 표준안이 어떻게 수정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토부가 밝힌 공정성과 주민 권익보호가 얼마나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신탁방식은 도입된 지 벌써 7년차를 맞이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돼 사업이 완료된 사례는 많지 않다. 근래 조합방식의 부작용에 대한 반발로 큰 기대를 받고 있지만 그 효용성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신탁사의 업무수행능력에 대한 불만족으로 이탈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했던가? 지금에서야 표준계약서 등이 마련되는 과정임을 고려하면 신탁방식에 대한 실질적인 검증 절차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구관이 명관일지 아니면 합리적인 대안으로 정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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