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ICAO 국제기준 개정 ‘기대 가득’ … 성남·수원 軍공항 ‘해결 난망’

성남공항 고도제한을 받는 성남 구시가지 일대
성남공항 고도제한을 받는 성남 구시가지 일대

윤석열 정부 들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난공불락처럼 함락되지 않은 규제가 있다. 공항 인근에 적용되는 고도제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이미 20여년이 흘렀지만 공항 고도제한은 예나 지금이나 철옹성처럼 단단하다. 공항 근처 정비사업장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지난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충남 서산비행장에서 열린 열다섯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방침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군과 지역주민이 상생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안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민 수요를 면밀히 검토해 전국적으로 총 1억3백만평(339㎢), 충남의 경우 서산비행장 주변 4,270만평(141㎢)의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가 이뤄진다면 주변의 정비사업장은 천형과 같은 고도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직접적인 고도제한 완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방부가 밝힌 세부내용에 따르면 군 비행장 주변 보호구역 287㎢(서산 등 7개 지역)는 기지 방호에 필요한 최소 범위로 축소하는 수준으로 해제될 전망이다.

그러나 건축물의 신축이나 증축, 건축물 용도변경 등을 함에 있어 비행안전구역별 제한고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할 수 있다. 즉, 실제 정비사업 관련 협의를 진행함에 있어 적용되는 기준이 ‘비행안전구역’에 의한 제한고도임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는 의미다.

비행안전구역이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의해 군용항공기의 이착륙에 있어서의 안전비행을 위해 국방부장관이 지정하는 구역을 말한다. 통상 정비사업의 심의 과정에서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갖는데, 비행안전구역에 대한 협의는 사실상 군의 의견을 수용할 뿐 변경의 여지는 없었다.

 

∥성남·수원, 軍공항 ‘해결 난망’

현재 정비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인 지자체 중에서 군 공항에 의해 고도제한 피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성남과 수원이다. 이들은 각종 선거가 있을 때마다 매번 고도제한 해제가 단골 공약으로 나올 만큼 그 지역에서는 오랜 숙원사업으로 손꼽힌다.

성남의 경우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정비사업이 진행되어오는 동안 줄곧 고도제한 완화 또는 해제를 요구해왔지만 군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분당 신도시를 중심으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노후도시 특별법)」에 의한 정비사업이 가시화되면서 고도제한 해제요구가 재차 불붙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의회 이서영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성남시는 서울공항으로 인해 전체 면적의 58.6%가 고도제한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공항의 위치와 그에 따른 비행안전구역을 살펴보면 재개발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태평동과 수진동 일대가 제5구역(내부수평면)에 속해 고도 45m 제한을 받는다. 또한 분당의 경우 제2구역(접근경사표면)과 제3구역(접근수평표면)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관련 이서영 경기도의원은 “성남시, 특히 45m 이하 고도제한을 받고 있는 분당 1기 신도시 일부 지역 주민들은 고도제한 규제로 인해 노후도시 특별법에서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인센티브를 적용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상대적 박탈감에 허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남시에서 발주한 연구용역을 국방부가 인정하도록 설득할 것,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민·관·군 협의체를 구성할 것, 그리고 특별법의 인센티브를 적용받지 못할 경우 지역주민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편 성남시는 지난 9월 기술적·제도적 고도제한 완화방안을 마련하고자 연구용역에 착수했으며, 연구결과가 나오면 국방부 및 군 관련기관에 고도제한 완화를 요청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난 27일 고도제한 완화 해법을 위해 북미 및 유렵지역에 현지시찰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시찰단은 ▲캐나다 밴쿠버 공항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 ▲오스트리아 빈 및 인스부르크 공항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을 방문해 현지 공항의 운항방식과 항행안전 절차를 확인하는 한편 공항 내부자료를 확보해 고도제한 완화 방안에 대한 항공학적 검토를 통해 성남시에 도입할 만한 항행안전을 고려한 비행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다.

항공학적 검토란 관련 위원회 의결로 국토교통부 장관이 항공기의 비행안전을 특히 해치지 아니한다고 결정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장애물의 설치 등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성남시가 항공학적 검토를 통해 고도제한 해제방안을 모색하는 반면 수원시는 보다 모험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 경기 남부권 대표도시로 발돋움한 수원의 위상을 고려해 수원공항 이전과 더불어 경기국제공항 건설 카드를 내밀고 있는 것.

그러나 군공항 이전과 국제공항 건설이라는 초대형 이슈가 쉽게 결정될 리는 만무한 일. 군 공항 이전을 두고 인접 지역인 화성시와의 갈등은 물론이고 정치권마저 찬반 논란이 격화돼 해법 마련의 길이 요원한 상황이다.

 

김포공항 일대 고도제한 현황(서울시 제공)
김포공항 일대 고도제한 현황(서울시 제공)

∥김포공항, ICAO 국제기준 개정 ‘기대 가득’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약80㎢, 서울시 면적의 13.2%)는 1958년 김포공항 개항 이후 공항 주변 고도제한으로 건축물의 높이를 제한받아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등에 많은 제약을 받아 왔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간 국토부와 서울시에서 각고의 노력을 전개해왔으나 고도제한 해제 관련 실질적 변경 및 항공학적 예외적 조정을 얻기 위해선 국제기준의 변경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정부-지방정부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최근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이하 ICAO)에서 항공 고도제한 관련 국제기준 전면 개정을 추진함에 따라 국토부와 서울시도 오는 2028년 11월 개정 시기에 맞춰 세부지침을 수립하고 항공학적 검토를 시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ICAO’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민간항공 항공기술·운송·시설 등의 발전·증진을 위해 1947년 설립된 UN산하 전문기구다. 우리나라는 1952년 12월에 가입해 2001년 처음 이사국에 선정된 이후 8연속 이사국으로 선임돼 현재까지 참여 중이다. 특히 이번 ICAO 국제기준 개정안은 1951년 초판이 나온 이후 약 70년 만에 가장 큰 변화를 담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ICAO에서는 공항안전과 주변 개발과의 조화를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전담반(TF) 설치 후 고도제한 국제기준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이번 개정안은 ①고도제한 표준안(장애물 제한표면)의 전면 개정, ②항공학적 검토(예외적으로 장애물 설치를 검토)를 위한 핵심절차 마련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에 기존의 항공기 안전운항을 위해 건물 등 장애물의 생성을 획일적으로 엄격히 규제했던 제한표면(OLS)을 보다 완화해 금지(OFS)표면과 평가(OES)표면으로 이원화될 전망이다. 특히 금지표면은 현재보다 축소하고, 평가표면은 해당 국가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시대적 여건 변화를 반영한 합리적인 기준이 제시됐다는 평가다.

ICAO의 국제기준 개정이 점차 가시화됨에 따라 항공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김포공항 주변 높이 등에 대한 계획적 관리를 위한 서울시의 역할도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서울시는 ICAO 국제기준 개정 후 국토교통부와 강서구청 등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김포공항 일대 고도제한 완화 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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